[이코노믹데일리] 최근 국내 정유업체들이 경기 침체에 빠진 가운데 치우친 사업 구조 개편을 위한 석유화학 부문 등의 투자를 확대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정유사업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지난 17일 70억 달러(9조2580억원) 규모의 '샤힌(Shaheen) 프로젝트' 투자를 결정했다. 샤힌은 아랍어로 '매'를 뜻한다.
에쓰오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 스팀 크래커 등 석유화학 설비를 구축, '그린 이니셔티브'의 한 축인 석유화학 사업 확장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샤힌 프로젝트는 지난 2018년 완공된 40억 달러 규모의 1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이은 2단계 사업이다. 스팀 크래커는 내년 착공해 오는 2026년 완공 예정이다. 예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최대 320만톤(t)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현재 생산 물량 기준 12%인 에쓰오일 석유화학 사업 비중은 2030년 2배 이상인 25% 수준으로 확대된다. 반면 같은 기간 정유 사업 비중은 82%에서 69%로 줄어든다.
앞서 GS칼텍스도 지난 11일 전남 여수2공장 인근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올레핀 생산시설(MFC)을 완공했다. 이 역시 정유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다.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은 같은 날 열린 준공식에서 "MFC 시설 준공은 비(非)정유 사업 비중이 확대되는 사업 다각화와 성장성을 동시에 이루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최고 수준의 석유화학 경쟁력을 갖추고 친환경 에너지, 자원 재활용까지 포괄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GS칼텍스는 MFC 시설 준공으로 연간 석유화학공업의 기본 원료인 에틸렌 75만t, 폴리에틸렌 50만t, 프로필렌(플라스틱 자동차 소재, 마스크, 기저귀 등의 기초원료) 41만t, 혼합C4유분(합성고무, 타이어 등의 소재) 24만t, 열분해가솔린(방향족 제품의 원료) 41만t 등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롯데케미칼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지난달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인 HPC 공장을 준공했다.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HPC 프로젝트는 3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한 초대형 석유화학 신사업이다. HPC 공장은 나프타와 LPG 원료를 활용하는 기존 석유화학공장과 달리 중질유분, 부생가스 등 저가 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오일뱅크는 이곳에서 연간 에틸렌 85만톤, 프로필렌 50만톤을 생산할 예정이다.
그간 현대오일뱅크는 계열사인 현대케미칼과 현대코스모를 통해 방향족 제품만 생산했지만, 이번 HPC 가동을 통해 올레핀 분야까지 진출하게 됐다.
국내 정유사들이 석유화학 사업 확장에 나선 이유는 수익 구조를 다각화할 수 있고, 정유-화학사업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는 데다 관련 업황도 2020년대 중반부터 반등해 안정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도 투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 흐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국내 정유사들이 한정적인 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며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별탈 없이 성공해 탈(脫) 석유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에 잘 대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