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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이후의 경쟁력…한국 대기업, 전략 무대가 바뀐다
※ '강철부대'는 철강·조선·해운·방산 같은 묵직한 산업 이슈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붉게 달아오른 용광로, 파도를 가르는 조선소, 금속보다 뜨거운 사람들의 땀방울까지. 산업 한복판에서 만나는 이슈를 '강철부대원'처럼 직접 뛰어다니며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말, 강철부대와 함께 대한민국 산업의 힘을 느껴보세요! <편집자주> [이코노믹데일리] 한국 대기업들은 더 이상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사업을 키우기 전에 리스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설계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공장 증설과 설비 투자가 성장의 상징이던 시기를 지나 이제 경쟁력의 무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연료전지 제조 자회사 청산, 한화그룹은 에너지 계열 지분 구조 재편 등에 나섰다. 이들 대미 수출기업들의 통관 리스크 대응 강화는 각기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제조와 외형 확장을 중심에 둔 전략에서 벗어나 비용과 리스크가 통제 가능한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방향으로 기업 전략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고정비와 물리적 구조 리스크 연료전지·발전설비·신재생 제조 사업은 표면적으로는 미래 산업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구조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CAPEX)에 프로젝트 단위 수주 구조가 결합돼 규모를 키워도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기 어렵다. 설치 이후에는 장기간 유지·보수와 성능 보증 책임이 뒤따르고 규제 환경 변화에 따라 비용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크다. '만들수록 좋아지는 사업'이 아니라 '만들수록 고정비가 쌓이는 사업'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최근 대기업 전략의 핵심은 제조 자체가 아니라 제조가 불러오는 구조적 부담을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느냐다. 일부 기업이 제조 사업에서 한 발 물러났다고 해서 해당 산업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직접 키울 영역과 외부에서 조달할 영역을 구분하며 그룹 전략과 맞지 않는 고정비 구조를 사전에 차단하는 선택에 가깝다. 통관·증빙이 가르는 제도적 구조 리스크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232조 관세, 우회덤핑 규제가 상시화되면서 대미 수출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관세율이 아니라 통관 단계의 설계로 옮겨갔다. 품목 분류 방식, 철강·알루미늄 함량 가치 산정 기준, 증빙 체계 관리 수준에 따라 실제 부담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회계·법무·통관·지배구조가 비용으로 인식됐다면 지금은 이 영역들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구조 설계에 따라 이익이 남을 수도, 리스크로 돌아올 수도 있는 환경이다. 생산 능력보다 내부 통제와 설계 역량이 먼저 평가받는 시대가 된 셈이다. 자본과 지배가 만드는 전략적 구조 리스크 구조부터 손보는 전략은 제조와 수출 현장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 구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화그룹이 에너지 사업 방향을 논하기에 앞서 자본과 지배 구조를 먼저 정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최근 한화그룹 오너 3세가 한화에너지 지분 일부를 재무적 투자자(FI)에 매각하며 지분 구조를 재편한 결정은 사업 확대나 축소를 곧바로 판단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향후 전략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사전 정비에 가깝다. 그동안 한화에너지는 오너 일가 개인 자본이면서 동시에 그룹 지배 구조와 맞물려 있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번 거래를 통해 그룹 전략을 위한 자본과 오너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자본의 역할이 보다 명확히 분리됐다. 특히 그룹 핵심 비상장 계열사에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는 당장의 상장이나 사업 방향을 예고하기보다 향후 에너지 사업을 키우거나 조정할 경우 외부 자본의 검증과 시장 기준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두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사업을 먼저 키운 뒤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 리스크를 먼저 정리한 뒤 사업 선택지를 열어두는 전략이 전면에 올라온 것이다. '확대' 아닌 '확률' 택한 경영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대기업 전략이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확률과 회수 가능성을 우선하는 '냉정한 경영'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비용과 리스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는 의미다. 공장을 짓지 않는 선택은 위축이 아니다. 규제와 비용, 자본과 리스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경쟁의 무대가 바뀌었음을 읽어냈다. 더 많이 만드는 쪽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않고 어떤 구조를 남길지를 설계하는 쪽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생산량이 아니라 구조의 완성도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국면이다. 강철부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 대기업들은 더 이상 공장 앞에 서 있지 않다. 생산량을 늘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관세와 자본, 지배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승부하는 기업만이 다음 판에 남고 있다.
2025-12-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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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열 확대한 현대글로비스…OEM 의존도 '양날의 검' 되나
[이코노믹데일리] 현대글로비스가 완성차 해운 부문에서 유럽·미주·중국 OEM(완성차 제조사) 등 비계열 물량 비중을 3년 만에 50%대로 끌어올리며 외형 성장을 이뤄냈지만, 성장의 엔진이 사실상 중국 OEM 물량에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구조적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비계열 고객 확대라는 성과는 분명하지만 통상·관세 변수에 민감한 중국 수출 흐름에 실적이 연동되는 체질적 한계가 회사의 해결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특히 최근 미·중 갈등과 각국의 관세 재편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해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의 올해 1~3분기 완성차 해운 매출 중 비계열 비중은 52%로 집계됐다. 2021년 61%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던 외부 물량 비중이 2022년 55%, 2023년 48%, 2024년 43%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다시 반등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 OEM 수출 물량이 글로비스 보유 선박을 가장 빠르게 채우며 비계열 확대를 이끈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유럽·미주 OEM과의 신규 계약도 늘었지만 실제 물량 증가폭은 중국 업체들의 해외 출하 확대가 좌우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완성차 수출은 2023~2025년 연평균 600만~700만대 수준으로 급증해 글로벌 1위 규모를 기록했으며 이 중 상당량이 한국·동남아·중동 등 PCTC(자동차운반선)투입이 필요한 항로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중국-한국 간 항로는 운항 거리가 2~3일에 불과해 회전율이 높고 대기·정박 시간을 포함해도 선박 투입 효율이 가장 좋은 노선으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가 확보한 외부 물량 중 중국 OEM 비중이 빠르게 확대된 이유다. 실제로 글로비스는 94척의 PCTC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OEM이 상하이·닝보·톈진 등 주요 항만에서 한국·중동향 신규 노선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선박 배정이 단기간에 확대됐다는 평가다. 다만 이러한 '중국발 성장'이 곧바로 '리스크'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완성차 수출은 미국과 유럽의 관세 인상, 보조금 회수 조사, 통상 규제 강화 등 외부 변수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4년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세부 규정을 통해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부품의 시장 진입을 사실상 제한했고 2025~2026년 단계적으로 관세 인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멕시코 정부도 최근 중국산 전기차의 우회 수출(멕시코→미국)을 겨냥한 조사를 시작하며 단속 강도를 높이고 있다. EU(유럽연합) 역시 2024년부터 진행 중인 중국산 전기차 반보조금 조사(ASMD) 결과를 토대로 2025년 말 또는 2026년부터 상계관세(정부 보조금만큼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제도)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언급한 상태다.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 OEM의 유럽·북미향 수출이 위축되며 한국·동남아 항로로의 전환 물량도 줄어들 수 있다. 업계는 2026년 이후 중국 OEM의 글로벌 수출이 지금 같은 성장세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글로비스 외부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높아진 만큼 물량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운 부문에서는 비계열 비중이 절반을 넘겼지만 회사 전체 매출 기준으로는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국내 물류·내륙 운송, 항만 이동, 탁송 등 육상 운송 사업 대부분이 현대차·기아 물량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물류는 계열사 신차 출고·내수 판매와 직접 연결돼 있어 외부 고객을 키우기 어려운 영역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해운·포워딩·유통 등 해외 중심 사업에서 비계열을 얼마나 확대하느냐가 전체 매출 구조를 바꾸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결국 중국 외 글로벌 OEM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현대글로비스가 내건 '2030년 전체 매출 기준 비계열 40%' 목표 달성의 핵심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OEM 물량은 단기간 급증했지만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유럽·미주·동남아 OEM을 대상으로 한 고객 다변화가 중장기 전략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중국의 완성차 수출이 전반적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운 부문의 외부 물량 확대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OEM과는 선복(배 실을 공간) 문의 등 협업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글로벌 신규 OEM을 대상으로 물류·해운 전반에 걸친 토털 솔루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2030년까지 전체 매출 중 비계열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자동차 공급망 관리, 글로벌 E2E(End-to-End) 물류, 해운 경쟁력 강화, 스마트 물류 등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외부 고객 기반을 넓혀갈 것"이라며 "중국 OEM뿐 아니라 유럽·미주·동남아 등 다국적 고객사와의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2025-12-12 17:2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