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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영풍, 갈등의 불씨와 복잡해지는 수싸움... MBK의 합류까지
[이코노믹데일리] "산불은 끝났지만, 불씨는 남았다" 산불은 대개 한 차례 휘몰아치고 나면 잠잠해진 듯 보인다. 그러나 표면 아래 남은 잔불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 기업 내 경영권 분쟁 역시 마찬가지다. 주주총회가 마무리되고 이사회 구성과 지분 구조가 정리되며 겉으로는 정적이 찾아온 듯하지만 갈등의 본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편집자 주> 기업의 내부 갈등은 단지 특정 개인 간의 다툼이나 일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너 일가 간의 경영권 분쟁,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마찰, 노사 관계, 기업지배구조 이슈는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기며 기업의 이미지와 의사결정, 나아가 지속가능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꺼지지 않은 불씨'는 고려아연·영풍, 금호석유화학 등 최근 몇 년 사이 기업 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주요 사례를 조명하며 끝나지 않은 갈등을 다룬다. 각각의 분쟁은 일정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남은 불씨는 여전히 활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법적 다툼, 이사회 내 균열, 지분 구조의 불안정성, 세대교체의 혼선 등은 형체만 달리한 '불씨'다. 산불이 남긴 잿더미 위에 다시금 연기와 열기를 감지하듯 이 시리즈는 기업에 남은 갈등의 흔적을 따라간다. ◆ 고려아연·영풍, 수많은 상흔과 선례를 남기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최근까지 산업계·재계에서 벌어진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이들의 갈등은 지난3월 주주총회에서 '주불'에 해당하는 영풍의 이사회 장악이 무산되며 현재는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잔불'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간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으며 현재도 여론전과 법적 공방이 치열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취재 중 자문을 구했던 한 법조계 전문가는 이번 분쟁에서 이뤄진 양측의 공방전을 두고 '추후 교과서에도 남을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쟁점이 다양하고 양측이 활용한 수단도 무궁무진했다는 의미다. 경영전략 입장 차이와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갈등,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합류로 본격화되는 지분 싸움, 유상증자와 공개매수로 출렁이는 주가, 자회사를 이용한 의결권 제한과 검찰의 사후 조사까지 사건은 길고도 복잡하다. 우선 사건의 발단을 돌아보자.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은 3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된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취임부터였다. ◆ 75년의 우정, 3세 경영으로 피어난 갈등의 불씨 영풍그룹은 지난 1949년 무역회사 영풍기업으로 문을 열었다. 1970년 경북 봉화군에 석포제련소를 세워 비철금속 제련업에 뛰어든 영풍은 추후 석포제련소 일대가 환경 관련 법령에 따라 청정지역으로 분류되자 사업 확장을 위해 고려아연을 별도로 설립하고 온산에 제2 제련소를 지었다. 이후 고려아연은 부가가치가 큰 납과 전기동, 인듐, 금, 은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고려아연은 현재 연간 120톤(t) 규모의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제련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의 공동 창업으로 시작된 영풍은 핵심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점차 그 규모가 커져왔으며 장씨 가문은 영풍 경영을, 최씨 가문은 고려아연 경영을 맡는 식으로 2대까지 공동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양측은 당시 20%대로 비슷한 수준의 영풍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장씨 일가의 지분이 늘어나면서 격차가 생겼고 최씨 가문이 운영하던 고려아연도 사실상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22년 취임한 최윤범 회장은 환경 규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신사업 발굴 등 시대적 요구에 따라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하면서 대규모 차입금을 들여왔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이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등을 주축으로 하는 신사업 프로젝트다. 업계에서는 여기부터 두 가문간의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고 본다. 경영전략에 이견이 생기자 최윤범 회장은 자신의 사업에 힘을 싣기 위해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우호지분을 늘렸고 이로 인해 본격적인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 커져가는 갈등과 MBK파트너스의 합류 최윤범 회장은 한화그룹 계열사 및 LG화학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했으며 현대차그룹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을 희석시켰다. 지난 2023년 당시 현대차 해외법인 HMG글로벌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참여해 전체 지분의 약 5%에 해당하는 104만주를 5272억원에 취득했다. 이로 인해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지분은 영풍보다 약 1% 웃돌게 됐다. 영풍은 이에 반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고려아연도 이에 대응해 영풍과의 황산취급대행 계약을 종료하며 석포제련소 폐기물 처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양측의 분쟁은 격렬하게 확산된다. 지난해 2월 주주총회에서 배당안과 정관 변경 등을 두고 벌어진 표대결을 시작으로 고려아연의 원료 공동구매 영업 종료 선언·비철금속 해외 유통과 판매를 맡는 서린상사(현 KZ트레이딩) 경영권 확보·종로로의 사옥 이전 등의 행보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같은해 9월 영풍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이면서 본격적인 지분 싸움이 시작된다. 3세 경영에 들어서 소통이 없었던 두 가문은 경영전략과 사업 향방에 대한 이견으로 입장 차가 커졌고, 결국 지분 싸움과 폐기물 처리 갈등을 계기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재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이슈로 발전된다. ◆ 공개매수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시도, 주주총회 전 의결권 확보 수싸움 영풍·MBK 연합의 지분 공략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고려아연의 지난한 수싸움은 한동안 치열하게 이어진다. 공개매수 등을 통해 주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는 주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 분쟁 직전 1주당 55만원이었던 주가는 한때 200만원을 넘겼으며 시가총액 기준 37위였던 영풍은 6위에 올랐다. MBK를 등에 업은 영풍은 최윤범 회장의 이사회를 뒤엎고 고려아연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공개매수는 매수자가 사전에 기간과 가격, 물량 등을 공지하고 장외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로 통상 기업 인수나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이뤄진다. 영풍·MBK는 매수 가격을 66만원으로 정했으나 이후 주가가 오르자 75만원으로 상향했고 최윤범 회장 측이 83만원으로 대응하자 영풍 측도 83만원으로 재상향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케피탈과 손을 잡고 89만원에 공개매수를 진행해 233만1302주를 확보한다. 이 중 일부는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으나 지분은 상당 수준 올랐다. 백기사로 불리는 베인은 당시 2600억원을 들여 지분 1.41%를 확보했으며 이후에는 주당 204만원이 넘는 가격에 3510주를 추가 인수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지난해 10월 말 고려아연은 채무 상환 목적이라며 발행주식의 전체 20% 규모인 373만2650주 유상증자 발행을 발표했다가 금융감독원의 제제로 인해 11월 철회했다. 검찰은 최근 고려아연 사무실과 주관 증권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고려아연이 당시 유상증자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는지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이후에도 MBK는 장내 매수로 고려아연 지분을 취득하는 등 지분 싸움을 이어왔으며 결국 영풍·MBK연합은 올해 초 기준 최윤범 회장 측보다 약 6%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진행된 양측의 수싸움은 지난 1월과 3월 진행된 두 차례의 주주총회까지 이어진다. 고려아연은 순환출자에 따른 '상호주 제한'카드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으며 자회사와 법인을 활용한 양측의 전략과 여론전을 활용한 경영권 공방은 이어진다. [계속]
2025-05-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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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국내 시장 시동…지배구조 개편 논의 궤도에 올리나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고려아연, 두산밥캣 등 지배구조 개편이 있을 때면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참전해 새로운 형태의 'K-행동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국회의 상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액주주 권리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지금, 진화하는 K-행동주의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편집자주> [이코노믹데일리] 최근 국내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 대상이 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지배구조 개편 논의도 덩달아 활발해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저평가된 기업이 많은 상황에서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인 일명 ‘K-행동주의’가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주식을 매수해 주주 지위를 확보한 후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이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특히 동종업계 기업보다 저평가된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 대상이 된다. 문제만 해결하면 기업가치 증대를 이룰 수 있어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이윤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6일 열린 ‘고려아연 사례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최근 불거진) 고려아연 사태는 지배권이 2세에서 3세로 승계되면서 오너 일가 간 갈등이 불거진 대표적 사례”라며 “이런 추세에 맞춰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기업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을 저지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시된 고려아연 사태는 지난 9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한 뒤 시작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MBK가 사모펀드임에도 행동주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오너 1, 2세대보다 적은 지분을 보유한 3세대 오너 시대에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데도 공감대를 형성했다(이코노믹데일리 10월 8일자 B1·B2면 참고).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된 요인으로 달라진 제도적 환경과 이에 맞는 전략 수정을 꼽았다. 2016년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됐고 2020년엔 주주대표소송제도 개선,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등 상법 개정이 이뤄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주주 행동주의 펀드 역할 확대에 따른 시장 영향’에서 “상법 개정과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행동주의 펀드의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행동주의 펀드 조성과 운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2022년부터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 활동은 뚜렷해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업체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 대상이 되는 국내 기업은 3곳에 불과하던 2017년에 비해 2021년 27곳, 2022년 49곳으로 늘어나더니 지난해는 77곳으로 급증했다. K-행동주의에서 비롯된 지배구조 개편은 현실화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2022년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경영진 개인 회사와의 내부거래를 지적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그 결과 SM은 해당 회사와 계약을 종료하고 사외이사 비율을 확대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트러스톤 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계열사인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자 태광산업 일반주주가 피해를 본다며 반대해 참여를 무산시켰다. KT&G, BYC 등도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 대상이 됐다. 최근엔 머스트자산운용이 MBK와 연합해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에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제언’이라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얼라인도 두산밥캣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행동주의 펀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히는 한국의 재벌 지배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은 주주가 제공한 자본을 기업이 잘 사용하는지, 자본을 투자하고 실패했을 때 수습을 잘하고 있는지 등을 감시하는 것”이라며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된 계기도 행동주의 펀드가 시장에서 활동해 경영진들이 긴장하면서 부터”라고 전했다.
2024-11-28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