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5건
-
-
-
여야를 넘는 인사, 진보의 후퇴가 아니라 성숙이다
진보 정권에서 보수 출신 인사를 등용할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왜 굳이 그 사람인가.” “개혁을 위해 우리 편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 현대 정치에서 진보 진영은 늘 ‘개혁의 주체’였고, 동시에 ‘기득권과의 싸움’을 숙명처럼 떠안아 왔기 때문이다. 인사는 곧 권력의 배분이며, 개혁 동력의 원천이라는 인식도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정책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낳고 있다. 지난 정부 인사 일부를 유임한 데 이어, 신규 예산 관련 핵심 직책 후보로 이혜훈 전 의원, 김성식 전 의원 등 보수 진영 출신 인사들을 지명 또는 임명한데 대해 “개혁의 색이 옅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인사 흐름을 단순히 ‘타협’이나 ‘후퇴’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놓칠 위험이 있다.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기조는 진보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과정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진보의 목표는 특정 진영의 장기 집권이 아니라, 사회를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역시 시대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 한국 진보 정치의 지난 성취는 분명하다. 권위주의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제도화했고, 복지와 노동, 공정이라는 의제를 공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했다. 정권 교체가 곧 ‘전면 부정’으로 이어지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약화됐고, 공직 사회는 늘 정치적 충성도에 흔들렸다. 개혁을 외치면서도 국정 운영의 안정성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대통령의 최근 인사는 이러한 진보 정치의 딜레마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볼 수 있다. 즉, 개혁의 방향은 유지하되, 집행의 방식은 넓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전체의 대통령이다. 국가 운영은 선거 캠프의 연장이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행정의 영역이다. 특히 재정과 예산 정책은 이념적 순수성보다 전문성과 균형 감각이 중요한 분야다. 재정은 복지 확대의 수단이자, 동시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다. 진보 정부가 재정을 무기로 삼으려면, 그만큼 재정 운용의 신뢰도 역시 확보해야 한다. 보수 진영에서 정책 경험을 쌓아온 인사를 기용하는 선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보수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진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진보 측에서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이것일 것이다. “보수 인사를 쓰다 보면 개혁이 희석되지 않을까.” 그러나 인사의 출신과 정책의 방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느냐’다. 개혁 정부의 기준은 인사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성과와 책임성에 있어야 한다. 고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통찰을 찾을 수 있다. 맹자는 군주의 덕목으로 “백성에게 이로운가 아닌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어느 편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 역시 직함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진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역할에 맞는 사람을 쓰는 것이다. 서양 정치사에서도 진보적 개혁은 종종 통합적 인사를 통해 완성됐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이라는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재정과 금융 분야에서는 보수적 전문가들의 조언을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개혁은 이념 논쟁을 넘어 제도로 정착될 수 있었다. 링컨의 ‘라이벌 팀’ 역시 마찬가지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그는 반대파를 배제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한 정치적 피로 상태에 놓여 있다. 진영 간 대립은 일상화됐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정부가 또다시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구도를 반복한다면, 개혁의 정당성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통합적 인사는 진보가 스스로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인사 정책은 바로 이 점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등용은 보수를 끌어안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기보다, 진보 정부가 더 이상 진영 정치에 갇히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진보의 후퇴가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기 철학이 분명할수록, 타인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물론 조건은 분명하다. 통합 인사는 성과로 증명돼야 한다. 보수 출신 인사라 할지라도 개혁 방향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면 과감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대로 진보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호받는 구조도 사라져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여야를 넘는 인사는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진보 정치가 지향해 온 공정의 가치 역시 여기에 있다. 공정이란 출신과 배경이 아니라, 역할과 성과로 평가받는 구조다. 인사에서조차 진영 논리가 작동한다면, 공정을 말할 자격은 약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기조는 공정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공직 사회에 주는 신호다. “정권이 바뀌어도 능력이 있으면 일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행정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인다. 이는 결국 진보 정책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효과로 돌아온다. 정권 초반의 속도전보다, 중장기적 성과가 중요한 이유다. 이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여야 통합 인사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시작 단계이며, 평가 역시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흐름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가려는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진보 정부가 오래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서경』에는 “사람을 얻으면 나라가 안정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같은 편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정책을 놓고 여권은 당장 감정적 불편함보다, 장기적 국정 성과와 사회 통합이라는 큰 그림을 놓고 평가할 때다. 여야를 넘는 인사는 진보의 포기가 아니라, 진보의 진화다. 개혁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을 쓰되, 분명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성숙한 리더십이며, 지금 이 대통령이 보여주려는 정치의 모습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결과다. 그 결과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오늘의 인사는 내일의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진보 정부가 통합을 말할 수 있을 때, 그 개혁은 비로소 사회 전체의 자산이 된다. 지금의 인사 흐름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5-12-28 18:53:32
-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오
[이코노믹데일리] 법률 해석보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기본·원칙·상식이라는 인류 공동체의 보편 정신이다.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몇 건의 판결에 대한 의견 차이를 넘어서 한국 사법의 방향과 수준을 묻는 본질적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정점에서 마지막 균형추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다. 그 누구보다 절제된 판단과 품위,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최근 조 대법원장의 잇따른 판결들은 사회적 반응을 양극단으로 갈라놓고 있으며, 이는 단지 정치적 진영 간 충돌이 아니라 사법부 리더십의 본령이 무엇인지 되묻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 진영 일부는 그의 결단을 ‘소신’으로 평가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대법원장답지 않은 처신”, “사법부의 안정성과 균형을 흔드는 행보”라고 우려한다. 이런 분위기는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를 공허한 정치 논쟁이 아니라 법치국가의 본질적 기준에 따라 숙고해야 할 주제로 만들고 있다. 한국 법조는 법관의 판단은 법에 따르고, 이치에 맞으며,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기본·원칙·상식’ 위에서 정당성을 얻는다고 강조해 왔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규범이 아니라 인류 문명이 축적한 보편 가치이며, 사법의 목적이 단순한 법률 적용을 넘어 사회의 질서와 신뢰를 지키는 데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러나 최근 조 대법원장의 판결은 이러한 보편 기준보다 개인적 법 철학이나 독자적 해석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관의 독립은 철저히 보장돼야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리성과 공동체의 정의감에서 멀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개념은 아니다. 사법부의 최고 리더가 법의 안정성, 판결의 예측 가능성, 사회적 수용성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국민은 법을 신뢰하기 어렵다. 사법부 전체의 권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혼란은 “대법원장이 공동체의 보편 기준 위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법원장은 개별 사건을 넘어 사법부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그 판단 하나가 법치의 신뢰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따라서 조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는 정치적 계산이나 진영의 감정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가 공유해온 기본·원칙·상식 위에서 스스로가 가장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조 대법원장이 국민적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법에 따르고, 이치에 맞고, 공공성을 지키는” 보편 기준을 바탕으로 국가 법치에 가장 이로운 선택을 내린다면, 그 결단이 잔류이든 퇴진이든 한국 사법의 성숙을 이끄는 길이 될 것이다. 법관은 판결의 품격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판결을 둘러싼 소음의 중심이 되는 순간 사법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대법원이 법률 문구 해석을 넘어 인류 공동체가 공유해온 기본·원칙·상식의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다. 한국 사법의 신뢰는 그 기반 위에서만 다시 세워질 수 있다.
2025-11-23 06: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