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52부(김연학 부장판사)는 20일 한국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낸 간접강제신청을 인용했다. 간접강제는 채무자(한국테크놀로지그룹)가 하루 단위로 일정 배상액을 채권자(한국테크놀로지)에게 내게 하는 제도다.
◆‘한국테크놀로지’ 상호 사용 시 매일 배상
재판부는 “채무자(한국테크놀로지그룹)가 1항의 의무(상호 사용 금지)를 위반할 때는 채권자(한국테크놀로지)에게 위반일수 1일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상호 사용을 멈추지 않을 경우,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한국테크놀로지 측에 매일 일정액을 내야 한다.
법원에 따르면, 당초 한국테크놀로지 측은 ‘심리적 강제수단으로서의 실익’을 내세워 고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채무자가 그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채권자가 입게 될 손해의 정도, 이 사건 결정에 이르게 된 경위, 채무자의 태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간접강제금을 대폭 줄였다. 그럼에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명칭 사용을 지속할 경우 내야 할 간접강제금은 한해 기준 최대 수십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같은 이름을 먼저 써온 중소기업을 상대로 ‘명칭사용 갑질’을 해왔다는 비판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특히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후계자로 낙점된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22일 국정감사에 불출석 하면서 관심이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 5월 한국타이어월드와이어가 바꾼 이름이다. 사명 변경은 조현범 사장과 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주도했다. 경영 전면에 나선 두 사람이 3세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이미 같은 이름을 쓰는 중소기업이 있었지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내부 검토 결과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내 왔다.
중소기업 한국테크놀로지는 2012년부터 해당 상호를 쓰고 있다. 자동차 전장사업과 5G 스마트폰 사업 등을 한다. 회사 측은 조현식·조현범 형제의 배임·횡령 재판과 하청 업체 갈등 등 부정적인 소식이 나올 때마다 대외 이미지와 주가에 피해를 입는다고 호소한다. 회사는 2001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에 한국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1월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5월 법원이 인용했다. 그럼에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이 명칭 사용을 계속 하자 같은달 27일 판교 신사옥에서 상호를 떼어내는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명칭 사용 금지대상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회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HANKOOK TECHNOLOGY GRUP CO. LTD’ ‘HANKOOK TECHNOLOGY GRUP’이 표시된 간판과 거래 서류, 선전 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 등이다.
법원의 강제집행에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명칭 사용 의지를 꺾지 않자, 한국테크놀로지는 다음날 간접강제 신청서를법원에 제출했다.
한국테크놀로지 측은 법원에 “채무자는 연 매출액이 8500억원에 이르는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라며 “이 사건 가처분결정(상호 사용 금지)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부당하게 탈취한 상호와 영업표지를 계속 사용해 얻는 경제적 이익은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간접강제를 청구했다.
그 사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상호 사용 금지 가처분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기존 결정을 계속 인용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0부(우라옥 부장판사)는 12일 △상호가 유사해 오인·혼동 가능성이 있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려고하는 ‘부정한 목적’이 소명됐고 △기존 한국테크놀로지의 영업표지 주지성이 인정되며 △부정경쟁방지법의 요건이 소명된 점 등을 결정 이유로 들었다. 두 회사 모두 자동차 부품류 제조 판매를 영위하는 점이 주된 근거였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두 회사의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한국테크놀로지는 21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조현범 사장과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을 형사고소했다. 지난 7월에는 상호 사용 관련 본안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