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에 의뢰한 '주주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 공격 대상이 된 국내 기업은 2019년 8곳에서 지난해 77곳으로 9.6배 증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데이터 연구기관 딜리전트 집계를 활용해 이 같이 분석했다.
행동주의펀드가 표적으로 삼은 기업은 주로 북미에 포진했으나 최근 아시아가 새로운 표적으로 부상했다. 조사 대상인 23개국에서 지난해 총 951개 회사가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았는데 지역별로 북미 619개사, 아시아 214개사, 유럽 113개사 순이었다. 2019년과 비교해 유럽 기업은 36.4% 감소했고 북미 기업은 2.1% 늘었다. 아시아 기업은 79.8%나 증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행동주의펀드에 대한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기업이 손쉬운 먹잇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반적으로 행동주의펀드는 기업 주주총회 시즌에 앞서 주식을 사들인 뒤 주주 제안 등 형식으로 경영진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기업 경영이나 대주주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이사회 진출을 시도하거나 배당 확대를 주장하는 식이다. 분쟁을 일으켜 주가가 오르고 나면 지분을 팔고 '엑시트(exit)'하는 일이 많다.
한 예로 지난 2020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미국 외식·엔터테인먼트 업체 '데이브 앤 버스터즈(Dave & Buster's)' 지분 10.7%를 매수, 행동주의를 암시하며 자사(KKR) 측 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출시켰다.
김 연구위원은 "사모펀드가 행동주의펀드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기업을 향한 공격이 펀드의 수익률을 높여주는 요긴한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각종 투자기관의 수익률 제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기업이 받는 압박 수위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둘 이상 펀드가 뛰어드는 '스와밍(Swarming·동시다발 공격)'도 많아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행동주의펀드가 사전 모의 없이 한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각자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례는 2020년 7건에서 2021년 9건, 2022년 17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아시아 국가 중 피격 기업이 가장 많은 일본(2023년 103개사)에서는 아예 상장 폐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에서 2022년 135개로 3배 이상 늘었는데 주요 사유로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이 언급됐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사실상 기업의 유일한 방어 수단인 자사주마저 소각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심을 받고 있다"면서 "지배주주 견제와 감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균형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