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데일리] 건설업계의 연말 인사 구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올해 주요 건설사들은 일제히 ‘재무통’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영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시공·기술 중심이던 기존 체제가 PF 부실, 고금리, 유동성 악화 등 금융 환경 변화에 밀려 사실상 ‘금융회사형 경영’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삽보다 전표가 먼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금관리 역량이 CEO 선임의 최우선 기준이 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지난 26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박현철 부회장 대신 오일근 롯데자산개발 대표를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그룹이 내세운 명분은 “PF 사태 이후 흐트러진 재무 안정성 회복”이었다. 실적 악화가 단초가 됐지만 궁극적 배경은 ‘자금 중심 경영’으로의 선회다.
박 부회장은 2022년 취임 직후 부채비율을 264.8%에서 지난해 말 196%까지 낮추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올해 3분기 기준 다시 214.3%로 치솟았고, 영업이익은 3년째 급감했다. 사업 확장이나 신사업 역량보다 ‘재무 체질개선 능력’이 절실해지면서 개발·자산운용 기반의 오 신임 대표가 선택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SK에코플랜트는 건설·환경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반도체 등 고부가 산업으로 외연을 넓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김영식 SK하이닉스 양산총괄을 대표로 낙점했다. 외형만 보면 ‘사업 다각화 인사’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투자 구조와 자금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금융형 리더십 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견 건설사들의 행보는 더욱 분명하다. 한화 건설부문은 대표적 재무 전문가인 김우석 재무실장을 신임 CEO로 앉혔고, 코오롱글로벌도 구조조정본부와 계열사 경영지원본부를 거친 김영범 코오롱ENP 대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신세계건설 역시 그룹 내 대표적 재무통으로 꼽히는 강승협 신세계푸드 대표를 새 수장으로 내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시공 능력보다 자금관리 능력이 생존을 가른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 같은 변화는 건설업의 위기와 직결된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PF 조달비용은 급증했고, 분양시장 부진과 분양가 규제로 주택사업의 현금 창출력은 약해졌다. 사업장 축소와 인력감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유다. 올해 반기 기준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전년 대비 임직원 수가 감소했고, 대형사뿐 아니라 중견사까지 조직경쟁력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지점에 몰려 있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건설사 경영은 더 이상 공사 능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대규모 사업을 굴리는 데 필수적인 금융 역량이 경영진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업구조가 금융업에 가까워지는데도 자금 조달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재무통 중심의 인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고 진단했다.
올해 정기 인사는 단순 인적 쇄신을 넘어, 한국 건설산업이 금융 환경 변화에 어떻게 재적응해가는지 보여주는 장기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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