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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원로 조갑제 선생 "진영 논리 넘어 法과 事實이 유일한 기준 돼야"
[이코노믹데일리] 오후 5시 무렵, 서울 종로구 세안문로 남서쪽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오피스텔 고층 사무실 안은 일반 가정의 거실처럼 고즈넉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전기와 국내 정치·국제 정세를 다룬 서적들이 빽빽히 꽂혀 있었다. 일부는 바닥과 책상 위에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조갑제닷컴과 조갑제TV를 운영하는 조갑제 선생의 공간이다. 1945년생, 기자 생활 55년. 이제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그는 “내 글방이 곧 내 전선”이라며 “책은 역사의 흔적, 기자는 그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하는 그의 면면이 한번에 느껴진다. 보수와 진보 구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조갑제 선생은 오랫동안 보수의 핵심에 있어온, 보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달 발간된 저서 ‘윤석열 몰락의 기록―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에서 전임 대통령의 재임 중 벌인 군사 쿠데타에 대해 “국가 파괴 행위”라 규정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보수 출신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냉철하게 비판했고 단호하게 쿠데타 세력과도, 부정선거와 같은 음모론과도 칼같이 거리를 뒀다. 어줍잖은 인물이 이미 실권 잃은 전직 대통령 한번 더 패대기치기하는 정도였다면 그리 관심 갖진 않을 게다. 그간 보수의 기치를 지켜온 그였기에 그가 버린 것, 그가 취한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보수·진보를 지나 극우·극좌가 난무하며 종교인지 정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이념 과잉이 광신처럼 뒤범벅이 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낸 채 공개적으로 뭔가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가. 이념의 미친 굿판 같은 이 사회를 향해 조갑제는 이제 보수·진보란 용어에서 탈피해 사실과 법치를 우선시할 것을 제안하며 음모론과 극단주의에 선을 그었다. “지금 (글로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극단화돼 있다. 둘러보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여러 나라에서 이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갑제 선생은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미국 이민당국이 한국인 300여명을 일주일간 구금한 사건을 예를 들었다. “우리 근로자들이 그 피해자가 돼 비루한 구금시설 시설에서 일부는 쇠사슬까지 찼고, 임산부도 구금되는 그런 막무가내 상황이었다. 일부 업무용 비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다 구금시설에 집어 넣어버렸다.” 그는 “이 사건은 일종의 ‘본보기’였다”며 “세계 곳곳이 이 같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이 같은 경향들이 나타난다고 보는가. “지금 세계 전체가 극단화돼 있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브라질,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갇히고, 언론은 자극적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회 전체가 불신과 분노에 휩싸였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조금만 자극을 줘도 터질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다.” -특히 우파의 극단화 원인은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 “부정선거 음모론에 그 뿌리가 있다. 한국의 2020년 4월 총선 부정선거론자들과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연계된 일종의 부정 선거 삼각 동맹이 형성됐다. 근거 없는 주장인데도 한국의 보수 내부를 깊이 분열시켰다. 음모론은 한 번 뿌리 내리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과 유튜브, 일부 교회가 이를 증폭시키며 사실처럼 퍼뜨려 극우화가 심화됐다.” -왜 유독 한국 보수가 큰 타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됐나. “지금도 우리 사회에 보수층으로 불릴 수 있는 국민은 약 45% 수준으로 건재하다. 하지만 이를 대표하던 보수 세력은 거의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국민의힘은 이미 극우화했고, ‘보수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사라졌다. 그 시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됐다. 탄핵까지 안 갔을 수도 있는 일을 비박 세력과 민주당 세력이 손을 잡고 선동적인 가짜 뉴스에 기초해 탄핵을 시킨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보수는 윤석열이란 검찰총장을 영웅화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그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했다. 지금 보수 세력의 괴멸은 윤석열의 폭주를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진영 논리에 빠져 박수부대가 되고 팬클럽이 된 대가다. 윤석열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걸 봤을 때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다. 탄핵 이후에는 이념보다 감정이 앞섰고, 결국 합리적 토론의 장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라 보는지.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결정부터가 법과 경호 상식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때부터 불안했다. 한국 현대사를 부정을 하고 어떻게 청와대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모독이다. 그 말을 했다는 것은 윤석열의 머릿속에는 보수적 역사관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치사한 방식으로 몰아내며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의료정원 확대와 의사 집단 적대화, 지난해 12·3 계엄령 선포까지 모두 내부를 향한 공격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좌파와 싸운 적이 없다. 항상 자기편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런 행보가 보수 세력의 붕괴를 재촉했다.” -지난해 12·3 계엄령의 배경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윤 전 대통령의 음주 문제, 부인과의 비정상적 관계, 주술적 영향, 그리고 부정선거 음모론이 뒤엉킨 결과였다. 저는 이를 ‘망상적·발작적 결정’이라 표현한다. 한 국가의 수장이 개인적 불안과 가족 문제를 국가 운영에 투영한 전례 없는 사례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해악을 거듭 강조하셨는데. “대통령이 직접 부정선거를 언급하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악령’과 같다. 한국 개신교 일각이 이를 퍼뜨리며 교인들을 현혹했는데 이는 종교를 빌미로 삼은 범죄다. 전 국민의 30%, 국민의힘 지지층의 60%가 한때 이 음모론을 믿었다. 공산주의가 한반도를 분단시킨 것만큼이나 오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음모론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철저한 수사와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검이 외관죄를 수사할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 음모론의 발원과 유포 경로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보수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흔들린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수년간 법적 절차가 이어졌듯이, 한국도 단호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 재건 가능성은. “보수는 지난 80년간 우리나라 산업화와 문명 건설의 주인공이었다. 군, 기업, 의료보험, 중화학 공업, 사회 인프라 모두 보수가 만든 업적들이다. 그러나 박근혜·윤석열 사태를 거치며 보수 세력의 절반은 좀비화·컬트화됐다. 이제는 법치와 사실을 기준으로 ‘국가 중심 세력’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민의힘 해체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준석·한동훈 세력 등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보수의 이름을 되찾으려면 ‘보수’라는 말 자체보다 실질적 가치와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그간 사회 전반의 지적(知的) 기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해왔는데. “한국어의 70%는 한자어다. 이를 몰라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휘력·판단력이 떨어지고, 고급 학문도 어려워진다. 저는 이를 ‘국가적 치매화’라고 부른다. 국민의 분별력이 약해지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먹히는 것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민적 사고력이 점차 퇴화해 민주주의 운영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젊은 세대가 통일 필요성에 회의적이란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갖고 계신 걸로 안다. “그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우리 한민족은 ‘일민족 일국가(一民族 一國家)’의 전통을 갖고 있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령하고 있다. 평화 공존은 임시일뿐, 통일을 포기하면 한국은 역사적 정통성을 잃고 결국 식민지화될 수 있다. 과거 서독처럼 실력을 기르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조갑제 선생은 “보수와 진보, 진영 논리를 넘어 법과 사실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극단화와 보수 진영의 몰락을 “분별력의 붕괴”로 진단했다. 이어 그는 우리 국민이 사고력을 높이고 분별력을 찾고 역사의 향방을 찾아내는 방안의 하나로 ‘회고록 쓰기’를 권장했다. “개개인의 회고록들이 모여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회고록 쓰기를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의 말 속에는 55년 기자 생활이 남긴 집요한 현실 감각과, 국가를 향한 냉철한 애정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2025-09-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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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1세기' 꿰뚫는 한국거래소 역사관…"증시 심장, 여의도에 뿌리내리다"
[이코노믹데일리] 부슬 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질 무렵,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KRX)서울사무소에 도착했다. 여의도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 머리 위로 눌러앉은 습기와 짙게 물든 바지 밑단은 꽤 묵직했다. 그러나 회전문을 지나자마자 불편함이 한순간에 웅장함으로 뒤바꿨다. 정문을 통해 색색의 푹신한 소파와 은은하게 쏟아지는 조명, 넓게 펼쳐진 대리석 바닥이 이 공간이 여의도 한복판에서도 깊이 뿌리내린 금융의 중심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종합홍보관 '마켓 스퀘어(MARKET SQUARE)'를 찾은 본지 기자들에게 권민서 한국거래소 홍보팀 대리는 과거와 현재의 자본시장 역사기 가득 채운 디지털 전시물과 실물 모형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시작은 증권이 아닌 곡물 거래소였다. 1896년 설립된 '인천미두취인소'는 당시 일본이 전쟁과 흉년으로 곡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값싼 조달을 위해 만든 상설 시장이었다. 비록 식민 통치의 산물이었지만, 회원제 운영과 선물거래 시스템 등 오늘날 거래소와 유사한 구조를 갖췄다는 점에서 '자본시장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엔 '경성주식현물취인소'와 '조선취인소' 등으로 명칭과 조직이 바뀌며 자본시장이 태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소들은 대부분 일본제국의 전시 통제 정책 하에 설립돼 '강제 자본 동원 수단'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 해방과 함께 '조선증권취인소'는 문을 닫았고, 1947년 증권구락부를 거쳐 1949년 국내 최초의 증권회사인 '대한증권'이 출범하면서 비로소 우리 손으로 만든 자본시장이 시작됐다. 현대적 의미의 한국거래소는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2005년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시장, 증권업협회를 통합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했고, 2009년에는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최근에는 코스피지수가 3200선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자본시장 심장'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거래소 종합홍보관은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 자본시장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관람객은 수작업 매매 시절 시세판과 유자형 포스트, 딱딱이 매매 등 과거의 현장감을 체험할 수 있고, 사전 예약을 하면 해설사의 안내를 통해 시장 구조와 제도까지 배울 수 있다. 특히 상장 절차에 대한 이해를 돕는 체험교육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상장 과정은 △사전 준비 △상장예비심사 △공모 △본 상장신청 △매매 개시로 구성되며, 거래소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 여부를 두 차례에 걸쳐 심사한다. 기업이 상장 후 공익을 해치거나 불공정 거래에 연루될 경우 상장 폐지 조치도 가능하다. 서연석 한국거래소 홍보2팀 과장은 "직접 상장에 관여했던 젝시믹스, 컬리 등 기업이 좋은 실적을 보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불공정 거래를 제재하고 공정한 시장을 유지하는 것도 거래소의 중요한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거래소는 단순히 상장 여부만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신뢰와 공정성을 유지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가 위치한 여의도의 변화도 흥미롭다. 원래 목축지였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는 비행장으로 사용됐고, 해방 이후에는 국회의사당·방송국·거래소 등이 들어서며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이러한 배경은 한국 자본시장 역시 외세의 영향, 산업화, 국제화 등 굴곡 진 현대사 속에서 성장해왔음을 상징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 시대' 공약 아래 거래소의 역할은 더욱더 주목 받고 있다. 거래 투명성 확보와 상장기업 감독, 시장 감시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국거래소는 자본시장 신뢰를 떠받치는 마지막 보루다. 한국거래소 종합홍보관은 이러한 금융 인프라의 역사와 역할을 체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자, 자본주의 근간을 이루는 '신뢰'의 무게를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다.
2025-07-20 0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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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유산이 백화점으로…신세계百 본점, '더 헤리티지' 개관
[이코노믹데일리]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이었던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더 헤리티지’로 재편해 개관했다. 9일 신세계에 따르면 더 헤리티지는 럭셔리, 전통과 미래, 글로벌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롭고 특별한 공간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더 헤리티지 개관에 맞춰 신세계백화점의 역사가 태동한 본관을 ‘더 리저브’로, 2005년 개관한 신관을 ‘디 에스테이트’로 새롭게 명명했다. 앞서 3월에 선보인 디 에스테이트,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더 헤리티지에 이 더 리저브도 압도적인 럭셔리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새단장에 나선다. 더 리저브는 올 하반기 오픈 예정이다. 더 헤리티지에는 럭셔리 콘텐츠가 채워졌다. 1층과 2층에는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 샤넬이 문을 열었다. 샤넬 매장에는 레디-투-웨어(RTW), 핸드백, 슈즈를 위한 전용 공간은 물론 '워치 & 화인 주얼리' 전용 살롱을 갖췄다. 또 샤넬의 고전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70여점 이상의 예술 작품, 오브제 및 가구가 전시됐다. 4층에는 대한민국 유통의 발자취를 담은 역사관과 고품격 미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마련됐다. 갤러리는 이달 중순 별도 개관할 예정이다. 역사관에서는 대한민국 근대 유통의 시작이었던 신세계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유물과 사료를 디지털로 전환해 모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는 1930~50년대 서울의 중심지였던 남대문 일대와 신세계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전을 개관전으로 준비했다. 이후에는 설치미술,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전시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5층에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가 들어선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신세계의 안목으로 풀어낸 공간이다. 한국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담은 전시가 열리거나 장인·작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한국의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원데이 클래스를 비롯해 전문가들의 강연, 워크숍 등이 주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외에도 신세계 한식연구소에서 한국의 디저트를 연구해 직접 개발한 메뉴를 소개하는 ‘디저트 살롱’과 옥상 정원 등도 조성돼 모두에게 개방된다. 지하 1층에는 한국의 헤티리지를 선물할 수 있는 공예 기프트숍이 마련됐다. 장인·작가들과 협업한 독점 상품과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의 정체성을 담은 선물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프랑스의 럭셔리 크리스털 브랜드 ‘라리끄’와 ‘바카라’, 명품 식기 브랜드 ‘크리스토플’,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덴마크의 하이엔드 오디오 전문 브랜드 ‘뱅앤올룹슨’까지 지하 1층에 함께 문을 열었다. 특히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 이상의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더 헤리티지 발렛 라운지’도 신설했다. 디 에스테이트에 신설된 ‘퍼스트 프라임 라운지’, 더 리저브에 새단장해 오픈할 ‘트리니티 라운지’ 등과 함께 격조 높은 VIP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며 “관광의 즐거움과 쇼핑의 설렘, 문화의 깊이까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4-09 10: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