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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만으로는 한계…건설업계, 시공 경쟁 넘어 '기술·서비스 경쟁' 시대로
[이코노믹데일리] 건설사들이 기존 건설 사업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택 경기 변동성이 커진 데다 공사 원가 상승과 브랜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공 중심의 사업 구조만으로는 수익과 성장을 동시에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주요 건설사들이 ‘차별화’ 요소를 내세우는 배경이다. 주거 플랫폼, 전기차 충전 기술, 모듈러 건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시공 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화 건설부문은 자체 개발한 천장형 전기차 충전 시스템 ‘EV 에어 스테이션’을 앞세워 전기차 충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바닥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구조로 주차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화재 감지 기능을 결합해 안전성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이 기술은 공공주택을 통해 실증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약을 체결하고 과천 S11BL 행복주택과 대구연호 A2BL 아파트 등에 EV 에어 스테이션을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적용 단지 확장뿐만 아니라 에너지 기업 등과도 ‘EV 에어 스테이션’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충전 인프라가 주거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른 만큼 선점 효과를 노리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한화 건설부문 관계자는 “정부의 전기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확대 기조에 따라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대한 건설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내 최초 천장형 전기차 충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편의성과 안정성을 강화해 차별화된 인프라 솔루션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주거 플랫폼 ‘홈닉(Homeniq)’을 통해 입주 이후 편의성을 강화하고 있다. 홈닉은 아파트 내 스마트홈 기능을 넘어 커뮤니티 시설 예약, 방문 차량 관리, 생활 편의 서비스 등을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통합한 플랫폼이다. 단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주거 브랜드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삼성물산은 특히 플랫폼 외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차관제 전문기업인 아마노코리아, 대영IoT, 다래파크텍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들 시스템이 적용된 단지에서 홈닉 기반 주차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방문 차량 등록과 주차 현황 관리 등을 홈닉으로 연동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플랫폼을 특정 단지에 묶어두기보다 범용 서비스로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두산건설, SK에코플랜트, 호반건설, 우미건설 등과 협력해 래미안이 아닌 단지에서도 ‘홈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휴사를 확장하고 있다. 건설 생산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공기 단축과 인력난 해소, 탄소 배출 저감 요구가 동시에 커지면서 모듈러 건축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을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품질 관리가 용이하고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GS건설은 모듈러 분야에서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 추세다. 모듈러 전문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를 통해 숙소형 건물과 부대시설 등에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리조트 운영 인력을 위한 기숙사를 모듈러 방식으로 준공했다. GS건설은 주거 시설과 상업시설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고층 모듈러 실증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경기 용인영덕 A2BL 공공주택 사업에서는 13층 규모의 모듈러 주택을 적용해 중층 이상 주거시설에서도 모듈러 공법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제철과 함께 ‘H-모듈러 랩’을 구축해 구조 안정성과 층간소음, 시스템 성능 등을 실물 크기로 검증하는 체계도 마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건설업의 체질 변화로 읽힌다. 과거처럼 수주 물량 확대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주거 가치사슬 전반으로 경쟁 무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으로 입주 이후를 관리하고 미래형 인프라를 선점하며 공법 혁신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경쟁 구도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입지와 분양가, 브랜드 인지도 등이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어떤 기술과 서비스를 갖췄는가’도 새로운 선택 기준으로 떠올랐다. 차별화 전략이 단기간에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플랫폼과 인프라는 투자 회수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모듈러 건축 역시 제도와 원가 구조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이 변화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전통적인 건설 사업만으로는 다음 시장을 대비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6-01-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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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표류하는 GBC, 현대건설의 '침묵 리스크'가 실적을 옥죈다
[이코노믹데일리] 2014년 현대차그룹이 10조5500억원에 매입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개발사업(Global Business Center·GBC)이 10년째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향후 50년 매출을 책임질 랜드마크”라는 기대 속에 추진된 초고층 복합개발은 105층 계획이 무산된 데 이어 저층 복합개발로 재검토되는 상황이다. 고(故)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이자 정의선 회장이 강조한 ‘뉴 현대’의 상징 프로젝트는 이제 “오너리스크의 대표 사례”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GBC 지연은 현대건설의 재무, 사업, 평판 전반에 복합적인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 고착이다. 현대건설은 현대차, 기아와 함께 부지 매입 단계에서 10조원대 자금을 투입했다. 시공사로서 장기 매출 회수를 기대했지만 공사가 사실상 중단되며 자금 회전은 멈춰 섰다. 대형 프로젝트 참여 여력은 물론 차기 투자 판단에도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매출 공백도 뚜렷하다. 장기 건설 프로젝트는 공정률에 따라 매출이 반영되지만 GBC는 공정률이 5% 수준에 머무르면서 실질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사업 규모가 단일 사업 기준 5조~6조원대로 평가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 실적 기반이 통째로 미뤄진 셈이다. 사업비 급증 가능성은 또 다른 부담이다. 2016년 약 2조원으로 추산되던 사업비는 인플레이션, 설계 변경, 인건비 상승 등이 반영되며 5조원 이상으로 증액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설계 변경 과정에서 발생한 용역 비용 역시 회수 불가능한 매몰 비용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수익성 계산식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건설의 실적 흐름도 녹록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5342억원으로 연간 목표치(1조1828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매출이 23조원을 넘겼음에도 영업이익률은 2.32%로 낮았다.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 해외사업 손실로 1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폴란드 본드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플랜트 등 해외사업 리스크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증권가는 “GBC는 한때 현대건설 주가의 기대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NICE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현대건설 분석자료에서 GBC와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를 핵심 리스크로 반복 명시했다. 오너의 전략 결정 지연이 재무 리스크로 전이되는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GBC 지연의 본질을 놓고 시장에선 “정의선 회장의 우선순위 변화가 핵심 변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전동화, UAM, 로봇, AI 등 미래 모빌리티 중심 전략을 강화하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본격적인 그룹 R&D 중심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GBC는 “하드웨어적 유산”으로 분류되며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GBC의 저층 개발 검토 역시 “미래 기술 투자 우선”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방향성보다 실행 방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업 축소나 일정 재조정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명확한 기준 제시 없이 지연만 반복될 경우 시장 불확실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프로젝트의 가장 큰 비용은 착수비가 아니라 지연에 따른 신뢰 손실”이라고 말했다. GBC 논란은 그룹 지배구조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속과 지배력 문제는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GBC 매입 당시 현대건설이 대규모 자금을 분담한 점을 두고 주주들 사이에서 “그룹 의사결정에 끌려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실행 계획이다. GBC의 최종 규모와 설계 방향뿐 아니라 결정 시점과 절차, 단계별 일정이 제시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추진 방식, 자금 계획, 위험관리 기준 등을 명확히 공표할 경우 사업 안정성 검토와 시장 평가가 보다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GBC는 현대건설의 기업가치뿐 아니라 정의선 회장의 경영 철학과 리더십도 평가받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전략적 불확실성”이라는 족쇄를 끊고 본연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을지가 향후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2025-11-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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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좋아졌지만 체질은 그대로… 착시 개선에 그친 건설사 원가율 하락
[이코노믹데일리] 대형 건설사들의 원가율이 일제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는 비용 효율화의 성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원가 현장이 실적에서 빠져나가며 생긴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건설사들이 신규 수주를 줄이고 사업을 보수적으로 운영한 결과이기도 해, 향후 주택 공급 위축과 실적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건설, DL이앤씨, 현대엔지니어링의 올해 3분기 원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3~11.75%포인트(p) 개선됐다. 건설업계가 통상 80%대를 ‘적정 원가율’로 보는 가운데, 주요 대형사들은 90% 초반까지 낮추며 체감 성과를 냈다. 가장 큰 개선폭을 보인 곳은 현대엔지니어링이다. 3분기 원가율은 93.6%(건축·주택 부문 91.9%)로 전년 대비 11.75%p 떨어졌다. 현대건설도 95.4%(건축·주택 95%)로 5.26%p 낮아졌고, DL이앤씨는 87.5%(주택사업 82.6%)로 2.3%p 개선됐다. 건설업계는 그동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원가율이 치솟으며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2년 121.46에서 2023년 127.34, 올해 9월에는 131.66까지 올라 3년 새 8.4% 상승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을 100으로 놓고 공사비 변동을 나타내는 지수로,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분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올해 3분기 원가율이 낮아진 것은 자재비 안정과 더불어 고원가 현장들이 순차적으로 실적에서 제외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22년까지 착공한 아파트 현장은 철근, 시멘트, 외주 단가가 급등해 손실 부담이 컸다”며 “이들 현장이 최근 준공되면서 손실이 회계상 반영되지 않아 전체 원가율이 하락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실제 원가 절감보다는 ‘손실 요인 제거’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원가율 개선을 수익성 회복으로 해석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신규 수주를 보수적으로 줄이고, 리스크가 큰 현장을 정리한 결과로 숫자가 개선된 것일 뿐 실제 현장 원가는 여전히 높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흐름이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사비 부담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사업성을 엄격히 따지면서 신규 착공이 줄어드는 현상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공동주택 착공 물량은 12만 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 감소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주요 단지의 착공 일정이 수차례 연기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가율 하락이 수익성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리스크 회피형 경영이 고착되면 공급 자체가 위축되고, 결국 분양시장과 전반적인 주택 공급망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가율이 안정세를 유지하더라도, 고비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철근과 시멘트 등 주요 자재의 글로벌 시세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인건비도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설업 전체직종 평균 임금은 27만6011원으로, 2022년(24만2931원) 대비 13.6% 올랐다. 한 건설정책 전문가는 “건설사들의 원가율 개선은 재무적 통제의 결과이지만, 이는 곧 신규 프로젝트의 위축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현장 효율화보다 사업 축소로 인한 착시 개선이 반복되면, 내년 이후에는 실적 공백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2025-11-12 0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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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약속이 멈추자 실적도 멈췄다
[이코노믹데일리] 서울 강남의 핵심 재건축 단지인 압구정3구역이 흔들리고 있다. 현대건설이 조합과 토지 소유권을 두고 맞서면서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은 “절차상 문제일 뿐”이라며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조합원들은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압구정3구역은 36만㎡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지로, 완공 시 강남권 재건축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조합과 현대건설의 관계가 흔들리며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토지 소유권 반환 문제’가 있다. 문제의 토지는 강남구 압구정동 462번지를 포함한 9필지로, 총면적 약 4만㎡에 이른다. 전체 구역의 10%를 차지하며 시가로는 약 2조5900억원 규모다. 이 부지는 1970년대 아파트 건설 당시 현대건설이 건물 소유권만 분양자에게 이전하고 토지 소유권은 남겨둔 채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당시 감독기관이던 서울시가 해당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 이후 조합원들은 “현대건설이 해당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건설에 “토지 소유권을 아파트 소유주들에게 이전하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상장기업으로서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일부 지분만 이전할 경우 배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적으로는 아직 확정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조합은 현대건설이 곧 토지를 넘겨줄 것이라며 조합원들을 안심시켰지만, 현대건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불신이 확산됐다. 조합 관계자는 “토지 문제는 준공 전까지만 해결되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조합이 진정시키려 해도 이미 조합원들의 표심에는 불안이 스며들었다”며 “재건축은 법보다 신뢰가 먼저다”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신뢰 논란은 압구정을 넘어 법정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법원은 대구 중구 78 태평상가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과 관련해 한국토지신탁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현대건설의 책임을 인정하고 132억55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사업은 2018년 한국토지신탁이 시행자로 지정된 뒤 2020년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으며 시작됐다. 그러나 2022년 현대건설이 공사비 488억원 증액을 요구하며 착공을 미루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계약서에는 공사비 조정 기준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로 명시했지만, 현대건설의 요구액은 기준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한국토지신탁은 “계약 범위를 벗어난 요구”라며 공사 개시를 촉구했지만, 현대건설은 “공사비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사업은 1년 넘게 멈춰섰고, 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공사를 미룬 책임은 현대건설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대건설이 물가지수 조항을 명확히 수용했으며, 경제상황 변화가 계약 효력을 뒤집을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시공사가 합의된 기준을 스스로 뒤집으며 공사를 미루면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비사업의 지연은 금융비 부담과 조합원 피해로 직결된다. 법원은 현대건설의 행위를 계약상 합의 위반으로 보고 시공사 책임을 명확히 했다. 현대건설의 신뢰 문제는 이제 숫자에도 나타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5342억원으로, 연간 목표치(1조1828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출은 23조원을 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2.32%에 불과하다. 지난해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프로젝트 손실로 1조원대 적자를 냈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턴어라운드 기대감이 있었지만, 폴란드 석유화학 프로젝트 본드콜(보증금 청구)과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플랜트 손실로 다시 수익성이 흔들렸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건설의 실적 부진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며 “국내외 프로젝트에서 신뢰가 흔들릴수록 수주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실적은 숫자로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신뢰가 깔려 있다.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기업이 결국 시장의 신뢰를 얻고, 신뢰는 곧 브랜드 가치로 이어진다. 반대로 신뢰를 잃으면 계약과 실적 모두 흔들린다. 현대건설은 여전히 원전, 인프라, 주택 등에서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불가리아 대형 원전 본계약과 미국의 소형모듈원전(SMR) 착공이 기대된다. 그러나 기업의 지속 성장에는 기술력보다 신뢰가 더 근본적이다. 압구정3구역의 지연과 대구 정비사업의 패소는 다른 사건이지만, 공통된 교훈을 남긴다. 약속을 미루면 공정표가 멈추고, 신뢰를 잃으면 실적이 흔들린다. 현대건설의 위기는 법리나 재무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신뢰가 무너지면 숫자는 흔들리고, 신뢰를 회복하면 실적은 돌아온다. 지금 현대건설이 회복해야 할 것은 공사비나 원가율이 아니라 약속이다.
2025-11-10 11: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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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없으면 사업도 없다"… 국감장서 고개 숙인 건설사 CEO들
[이코노믹데일리]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최대 5% 과징금과 등록 말소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들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잇달아 고개를 숙였다. 대표들은 “안전 없이는 사업도 없다”며 사고 예방을 위한 전면 점검과 조직 쇄신 의지를 밝혔다.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국감에는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등 주요 건설사 대표와 안전책임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 사고가 기업 신뢰를 흔든 데다 정부의 강력한 제재 방침이 겹치면서 국감장은 사실상 ‘건설업계 청문회’로 변했다.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는 “중대재해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대표이사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 이후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만, 안전경영을 통해 회사가 다시 바로 설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지난 8월 잇단 산재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희민 전 대표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사망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영업이익의 5% 이내 과징금 부과, 반복 기업 등록 말소, 사업 중단 명령 등을 포함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노동부는 이달부터 중대재해 2회 이상 발생 기업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위반 시 과징금과 행정제재를 병행할 계획이다.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는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가 또 발생하면 회사를 접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 현장을 중단시켰다”며 “외부 전문기관의 진단을 거쳐 안전이 확보된 뒤 공사를 재개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불가능하다”며 “이제는 수익보다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조태제 최고안전책임자(CSO)는 “광주 붕괴 사고를 두 차례 겪은 만큼, 회사가 안전 문제로 어떤 타격을 받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작은 부주의에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안성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로 비판을 받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주우정 대표도 “안전과 품질이 생존의 기본 가치임을 다시 인식하고 있다”며 “사고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품질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위원회 맹성규 위원장은 “건설 현장은 전체 산업재해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이번 국감에 나온 증인들은 2020년 이후 중대재해 사망자가 15명 이상이거나 형사 기소된 기업 관계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도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를 국정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며 “이번 국감이 건설업계의 안전의식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을 단순한 ‘처벌 강화’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전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법적 리스크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안전 확보가 곧 기업 존속의 조건으로 바뀌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산재사망자 절반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문제의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올해 1∼9월 기준 건설현장 사망자는 290명으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574명의 절반을 넘는다. 이 중 70%가 하청·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원청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중대재해가 반복된 기업에는 과징금과 함께 등록 말소까지 병행할 방침이다. 업계는 사실상 퇴출제에 가깝다고 본다. 한 대형 건설사 안전본부 관계자는 “영업이익 5% 과징금은 매출 수천억 원 현장에서는 수십억 원 규모로, 사실상 사업 중단에 가깝다”며 “책임이 모호했던 하도급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리 의무가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평가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과거처럼 벌금을 비용으로 인식하면 기업은 계속 사고를 반복한다”며 “안전관리 예산을 수익 모델에 포함시키는 경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업은 여전히 전체 산업재해의 절반을 차지하는 위험한 업종이다. 이번 국감에서 드러난 것은 정부의 압박보다도 기업 스스로의 위기의식이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업도 없다”는 CEO들의 말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이윤보다 안전을, 단기 실적보다 신뢰를 택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건설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5-10-14 07: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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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건설, '오송 참사' 후 국감 증인석에… 건설사 CEO 줄소환
[이코노믹데일리] 국정감사 시즌을 앞두고 건설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는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증인으로 소환된다. 최근 잇따른 건설현장 사망사고와 부실시공 논란이 겹치면서, 국감장이 사실상 ‘청문회장’으로 변할 전망이다. 13일 국회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오늘(13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국토위 국감에는 10개 건설사 대표에게 증인 출석 요구가 전달됐다. 그중에서도 금호건설 박세창 부회장은 유일하게 별도 일정으로 채택됐다. 건설사고, 안전사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세 가지 사유로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건설사 대표들이 13일 출석하는 것과 달리, 금호건설만 29일 따로 지정됐다. 국회가 오송참사 등 특수 사건을 별도로 다루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호건설은 올해 초부터 잇단 사고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 서울 제기동 동북선 도시철도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굴착기에 깔려 숨졌고, 3월 청주테크노폴리스 공사 현장에서는 크레인 붐대가 꺾이면서 근로자가 사망했다. 여기에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겹치며 ‘사고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금호건설은 제방도로 확장공사 중 기존 제방을 무단 철거하고 부실하게 임시 제방을 쌓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서재환 전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줄줄이 소환됐다. 현대건설 이한우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 수의계약 파기 논란과 대통령 관저 공사 특혜 의혹,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로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롯데건설 박현철 대표는 쌍령공원 민간개발사업의 유동성 문제와 김해·인천 현장의 중대재해 사고로 출석 대상이 됐다. 대우건설 김보현 사장은 2022년 이후 12건의 사망사고를 내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로 불린다. 이밖에 HDC현대산업개발 정경구 대표,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대표, 포스코이앤씨 송치영 사장, GS건설 허윤홍 사장, DL그룹 이해욱 회장도 모두 증인 명단에 올랐다. 이들 기업은 교량 붕괴, 추락, 감전 등 다양한 형태의 현장 사고로 질의 대상이 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7월 함양~창녕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또 다른 현장에서 감전사고가 일어나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결국 정희민 전 대표가 물러나고 송치영 사장이 새로 취임했으며, 이번 국감에서 직접 해명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 국감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대규모 감사다. 여야를 막론하고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가능성이 높다. 국회 관계자는 “올해는 사회적 공분이 큰 만큼 경영책임자에 대한 질의 강도가 예년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긴급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망사고가 잇따른 데다 사회 분위기도 좋지 않아 CEO 대부분이 증인 출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국감이 건설업계 신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10-13 08: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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