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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만 유리한 지배구조 개편…기업 가치는 '밸류 다운'
[이코노믹데일리] 지난 2015년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주식 교환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0.35였다.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가 제일모직 주식 0.35주의 가치와 같다는 의미였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 반대 의사를 제출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도 자문 보고서에 “합병 절차가 법을 준수하지만,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저평가돼 있어 주주에게 현저히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대 의견이 모인 이유는 합병비율 산정 방식이었다. 삼성물산 주가는 낮은 편에 속한 반면 제일모직은 고평가된 상태였는데 이런 게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여론도 좋지 않았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 지나치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된 건 '지배구조와 얽힌 합병'이기 때문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두 달 뒤 합병안은 양사의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삼성 합병의 여진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너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고민하는 다른 대기업이 삼성 합병의 형태를 따라가고 있어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도 맞지 않는 행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9일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 합병은 대기업 집단 내 계열사 간 합병"이라며 "기업들은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설명하지만, 사람들은 지배주주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모비스 일부 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하고 분할한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기로 했다. 삼성의 합병 방법과 동일하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가장 고평가됐고 주식을 거의 보유하지 않은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가장 낮은 시기에 주식 교환 방식으로 합병을 시도했다. 그러나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에도 SK그룹과 두산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이 문제가 됐다. SK그룹이 지난 7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발표했을 때도 두 회사의 합병비율(1대1.19)이 문제가 됐다.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가 아닌 시가를 합병 가액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회사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의결권 자문사 등도 반대 의견을 내놨다. 비슷한 시기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완전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두산밥캣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반발하고 금융감독원이 두산 측 정정신고서를 두 차례 반려했다. 결국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주식을 1대0.63 비율로 교환한다는 지배구조 개편안 일부를 철회하기로 했다. 삼성 합병 방식이 반복되는 원인으로 꼽히는 건'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른 합병비율 산정 방식이다. 상장사 간 합병은 기준시가(주가)에 근거해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했다. 기준시가는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한 값이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정되는 합병가액이 주식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합병 시점도 지배주주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계열사간 거래로 '밸류 다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민 교수는 "두산의 경우 합병 당사자는 물론 합병과 관련 없는 두산그룹 계열사 주가도 다같이 떨어졌다. 계열사간 이해관계 충돌로 발생한 일종의 '시스템 리스크'인데 이런 게 없어져야 밸류업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기업들에 대한 불신이 양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삼성 합병의 경우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에서 벌어진 일이라 한국 전체에 대한 신뢰도에 손상을 미쳤다"며 "한국은 지배구조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해 미래 가치 할인율을 높이는 등 패널티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2024-10-10 07:00:00
"대기업 중복상장, 주주 간 이해충돌…'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이코노믹데일리] 불공정 합병 논란을 촉발한 두산그룹 사례처럼 대기업집단의 사업구조 개편은 계열사 중복 상장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주주 간 이해충돌을 일으키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힘들게 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이 주최한 '불공정한 인수합병 방지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서 “중복 상장으로 주주 간 이해충돌이 발생하면 계열사 간 위험이 전이되면서 연관된 계열사의 주가는 다같이 하락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완전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두산밥캣을 보유한 주주들은 즉각 반발했고 이에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일부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금융감독원이 두산 측의 정정신고서를 두 차례 반려한 가운데 두산그룹이 정정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태는 현재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 교수는 “엄연한 상장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사이의 거래인데 그들 이사회는 조용하다”며 “중복 상장 문제에도 국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합병 관련 공시를 보면 합병 이유가 자세히 나와있지 않고 주주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자세한 내용은 두산로보틱스 주식회사가 제출할 증권신고서를 참고하라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현행 자본시장법상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합병가액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윤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합병가액 산정을 객관적 지표인 주가로 한다고 하지만, 타이밍은 지배주주가 주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시점에 합병이 이뤄지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일본, 영국 등 해외 주요국 사례를 들며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의 경우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을 회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는데 시장주가보다 높은 합병가액이 결정되고 있다”며 “일본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산정할 때 시너지를 포함한 가치까지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이 지배주주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그룹 내 다른 회사들 사이에서 인사 이동, 승진이 이뤄지는 등 독립된 법인이 한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주간 이해충돌 사안에 대해서는 일반주주들의 논의 및 결의를 거치도록 하기 위한 기구 등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4-09-30 20: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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