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9월 사실상 그룹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국내 주요 그룹사 중 가장 보수적 문화를 가진 현대차그룹의 체질부터 확 바꾸기 시작했다.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위해 기존 임원진들을 대거 교체하며 '세대교체' 신호탄을 쐈다.
지난 해에는 유연근무제와 복장 자율화를 통해 개개인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결재판을 없애고 이메일 등 비대면 보고를 확대하는 등 조직문화를 바꾸면서 기업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현대차 연구개발조직에서 나온 성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말 미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인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경영 전략은 한마디로 말하면 '실용적 혁신'이다.
정 부회장은 또 산업 트렌드를 발빠르게 읽고, 이를 고객친화적 시각으로 접목시키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나갔다.
정 부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고객들이 원하는 걸 충족시키기 위해 그 기대를 뛰어넘는 감성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은 한 발 앞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고급차, 친환경차가 두각을 나타내는 시장 트렌드를 겨냥, 신사업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지난 2017년 6월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코나 발표회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크기별로 다양한 SUV라인업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기아차의 사업체제를 권역별 책임경영 체제 기반으로 바꿨다. 글로벌 권역본부를 설립하고 권역본부 중심으로 현지 시장 상황에 맞게 신속하고 고객 지향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대형SUV에 대한 인기가 높다는 점을 착안, 미국시장 전용 차인 텔루라이드를 출시해 성공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부회장은 텔루라이드 개발에서부터 출시까지 철저히 '현지인의 시각'으로 추진할 것을 신신 당부했다.
그 결과 텔루라이드는 기아차 최초로 `북미 올해의 차(SUV 부문)`에 선정됐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대형 SUV 시장에서 5만8000대 이상 판매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소형 SUV 셀토스 또한 인도와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힘입어 현대차는 지난 해 3조원대 영업이익을 회복하고 매출액도 처음 100조원대로 올라섰다. 기아차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3% 이상 늘어났다. 현대·기아차는 올해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수익성이 높은 모델과 여러 신차로 세계 시장에서 판매를 더 늘리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2020년 세계 승용차 시장에서 SUV 비중이 36.9%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친환경차로 꼽히는 전기·수소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접목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움켜 쥐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현대차는 새로운 10년의 시작점인 2020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중·장기 혁신 계획 ‘2025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이라는 새 목표를 내놓았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내연기관차 중심이었던 지금의 사업 구조를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Smart Mobility Device)’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여기에 2025년까지 약 61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2028년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인 ‘플라잉카’를 내놓겠다고 선포했다. 현대차는 올해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20’에서 개인용 비행체 'PAV'·'PBV'를 공개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항공기 전문가인 신재원 부사장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등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올해 기술 개발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상상하는 미래가 현실로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모빌리티를 향한 꿈과 자신감은 바로 '인간 중심'이라는 정 부회장의 개발철학에서 비롯됐다.
모빌리티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바꾸는 가치의 도구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 정 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100년 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