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게임 업계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기나긴 보릿고개를 지나는 가운데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라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크래프톤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시프트업, 펄어비스 등 5대 상장 게임사의 시가총액은 크래프톤 한 곳을 제외하고 올해 초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게임사들은 지난 1분기 자사주 소각과 현금 배당 확대 등을 내걸었지만 4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주주 달래기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크래프톤만 '훨훨'…저평가 늪에 빠진 게임사
지난 7일 기준 5대 상장 게임사의 시총 합계는 31조5775억원으로 지난 1월 2일 26조2543억원과 비교해 5조3232억원 증가했다. 5개사 전체로 보면 연초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것이지만 시총이 6조원 가까이 급증한 크래프톤을 빼면 마이너스다. 그나마 엔씨소프트를 제치고 시총 2위로 올라선 넷마블이 1500억원가량 값어치를 늘리며 선방했다.
올해 7월 기업공개(IPO)를 통해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한 시프트업은 상장 첫날(7월 11일) 시총이 4조1418억원에 달했지만 10월 7일 현재 3조7626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표작인 '승리의 여신: 니케'의 흥행으로 IPO 직전 높았던 기대감이 차기작 공백으로 사그라지면서 뒷심이 빠졌다는 분석이다.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에 밀린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시총은 최근 10개월 새 약 3400억원(6.5%) 감소했다. 실적이 장기간 부진한 탓으로 엔씨소프트의 영업이익은 지난 1분기 257억원, 2분기 88억원에 그쳤다. 1년 전 같은 기간 각각 816억원, 353억원을 기록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펄어비스 역시 시총이 연초(2조4800억원)와 비슷한 2조4671억원 수준에 머무른 상태다. 히트작인 '검은사막'과 '이브'의 서비스 기간이 각각 10년, 21년으로 길어지며 점진적인 수익 하락을 겪고 있어서다.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게임사들은 나름대로 주주 가치를 높이려는 방책을 내놨다.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증대가 대표적이다. 엔씨소프트는 당기순이익 30%를 현금 배당한다는 주주 환원 강화 기조를 10년째 유지했고 지난달 자사주 약 730억원을 매입하는 계획도 내놨다. 크래프톤도 지난 5월 말 자사주 1200억원어치를 소각했다.
그러나 이들 게임사의 밸류업은 아직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린다. 정부가 올해 들어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게임사는 여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주가 평가 척도 중 하나로 꼽히는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자산가치로 나눈 비율)이 1배보다 낮은 곳은 앞선 5개사 중 넷마블(0.93배)뿐이다. 범위를 넓혀 보면 NHN(0.35배), 컴투스(0.44배) 등도 대표적인 저(低)PBR 기업이다. 일반적으로 PBR이 1보다 낮으면 그만큼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보는데 자산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게임 업종 특성상 PBR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밸류업 지수'에 게임사 중 엔씨소프트만 유일하게 포함된 점도 이를 방증한다. 엔씨소프트의 PBR은 약 1.4배 수준으로 게임 업계에서도 높은 편에 속하지만 2021년 이후 계속해서 주가가 떨어지며 저평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인 2021년 2월 100만원을 넘긴 엔씨소프트 주가는 현재 2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한풀 꺾인 모바일 게임 인기에 기업 가치도 제자리
국내 게임 업계가 밸류업이라는 과제를 쉽사리 풀지 못하는 이유는 게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기존에 해온 게임을 떠나는데 이들을 끌어올 신작은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23 게임 이용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62.9%였다. 만 10~65세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전년(74.4%)보다 10%P 넘게 줄어든 수치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을 비롯한 10개 게임사가 모바일 게임으로 벌어들인 매출 역시 같은 기간 2022년 9조원에서 지난해 8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게임사의 호황기를 이끈 고액 과금, 모바일 중심 구조가 엔데믹 이후 흔들린 결과다. 고성능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모바일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야외 활동 중단으로 둔화한 소비가 게임으로 몰려들었지만 감염병 위기가 해소되자 이용자들이 다른 즐길 거리를 찾게 됐다는 것이다.
대형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으로 획일화된 장르도 게임사의 밸류업을 막는 요인으로 지목되지만 업계에서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MMORPG는 여전히 성공 가능성이 큰 장르"라며 "최근 개발 중인 신작은 빠른 성장, 속도감 있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