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부사장 35명을 비롯해 총 137명을 승진시키는 2025년 정기임원 인사를 29일 발표했다. 이틀 전인 27일엔 사장 승진 2명, 위촉업무 변경 7명 등 총 9명 규모의 정기 사장단 인사를 진행했다.
업계 관계자는 “2020년부터 꾸준히 승진자 숫자가 줄고 있는데 이번에도 인적 쇄신 없는 보수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며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글로벌 전자 사업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올해 들어 안팎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의 경우 SK하이닉스와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밀린 데다 파운드리 사업도 대만 TSMC가 삼성전자의 추격을 따돌리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분기 삼성전자는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했다.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이례적으로 투자자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글로벌 환경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서다.
내부 상황도 좋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거버넌스(지배구조) 리스크가 삼성전자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경쟁사 SK하이닉스와 달리 유독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도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저에는 삼성전자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주가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 14일 주가가 4년 5개월만에 4만원대까지 내려가자 삼성전자는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수를 발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크게 반등하지 못한 채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5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25일엔 이 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결심공판에서 “누군가는 근본적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면서 “지금 삼성이 맞이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삼성 위기론’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인사가 쇄신보다 안정을 택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이번에 신설된 삼성글로벌리서치 경영진단실과 경영진단실장 사장으로 임명된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다.
경영진단실은 관계사의 요청에 의해 경영·조직·업무 프로세스 등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 도출을 지원하는 전문 컨설팅 조직이다. 미래전략실 출신에 '전략통'이라 불리는 최 사장이 삼성글로벌리서치를 이끈다는 점에서 미전실의 부활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현재의 경영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성과주의 원칙 아래 검증된 인재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등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며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젊은 리더들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