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1997년 겨울,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 폭풍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외화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실행하게 되며 기업들은 줄도산했고, 금융시장은 얼어붙었습니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현금을 움켜쥐고 버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때 한 젊은 금융인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투자 문화를 바꿀 때”라며 미래에셋투신운용(현 미래에셋자산운용) 을 세운 사람이 바로 박현주 회장이었습니다.
창업 초기,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누가 이런 때 펀드에 돈을 넣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포 속에서도 기회를 보는 것이 진짜 투자’라 믿었고, ‘적립식 펀드’란 개념을 내세워 개인투자자 중심의 장기투자 문화를 처음으로 시장에 뿌리내렸습니다.
당시 국내 투자자 대부분이 단기 수익에 치중하던 시절, 박 회장은 장기투자 철학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투자는 기업의 성장을 함께하는 장기 여정’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오며 완전히 새로운 금융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후 그의 도전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2003년, 그는 한국 금융사로는 이례적으로 홍콩에 미래에셋글로벌투자운용을 설립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 진출은 모험에 가까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세계 자본의 흐름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미래에셋은 인도, 브라질, 미국, 캐나다 등 15개국 이상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한국 자본의 세계화’를 이끈 첫 민간 금융그룹이 됐습니다.
창업 10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 첫 투자은행의 해외 진출에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개척자’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했으나,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해온 까닭에 그 미래상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2004년 1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같이 “미래에셋의 미래는 세계 시장에 있다. 국내 경쟁도 중요하지만 해외 개척 없이는 진정한 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습니다.
누구보다 멀리 앞선 길을 보는 눈을 가진 박 회장은 디시털 시대가 도래하자 “돈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금융을 해야 한다”며 디지털 자본시장 시대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은 전통 금융의 경계를 넘어 디지털 혁신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테크기업 중심의 장기투자 전략을 이어가며, 프라이빗뱅킹(PB) 플랫폼과 인공지능(AI)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로 차세대 금융 모델을 실험 중입니다.
박현주 회장의 ‘별의 순간’은 IMF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두려움을 기회로 바꾼 결단’에 있습니다. “한국 자본시장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던 그의 리더십은 한국 금융이 단순히 예금과 대출의 틀을 넘어, 투자와 자본시장의 시대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장기투자·글로벌 분산·책임 있는 자본’이란 미래에셋의 기업 철학은 이제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됐습니다.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던 박 회장의 별은 여전히, 한국 금융의 내일을 비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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