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사이트
아주일보
베트남
회원서비스
로그인
회원가입
지면보기
【중국을 제대로 알자 ⑨】 중국은 왜 '예측 가능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
기사 읽기 도구
공유하기
기사 프린트
글씨 크게
글씨 작게
2026.02.06 금요일
맑음 서울 -3˚C
맑음 부산 8˚C
맑음 대구 6˚C
맑음 인천 -5˚C
흐림 광주 1˚C
흐림 대전 -3˚C
흐림 울산 6˚C
흐림 강릉 -1˚C
흐림 제주 4˚C
국제

【중국을 제대로 알자 ⑨】 중국은 왜 '예측 가능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허찬욱 e경제일보 부장
2026-02-06 15:07:21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중국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중국은 의외로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끝까지 믿기는 어렵다.” 이 표현은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상당히 정확한 진단이다. 중국은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규칙과 논리를 따라 행동한다. 문제는 그 규칙이 보편적 신뢰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데 있다.

중국이 예측 가능한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중국은 국가 이익과 체제 안정이라는 두 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외교와 경제, 안보와 사회 정책을 막론하고 이 두 기준을 벗어난 결정은 드물다. 중국의 행동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이며 그 계산의 기준은 상당히 일관돼 있다.

중국의 정책 결정은 단기 여론보다 중장기 목표에 종속된다. 이는 외부에서 볼 때 경직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중국은 한 번 설정한 방향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외부 압력이나 일시적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목표와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정책은 유지된다.

이 때문에 중국은 협상 과정에서도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원칙을 앞세우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며 공개적인 굴복을 피한다. 이 패턴을 이해하면 중국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국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보다는 점진적 이동을 선호한다.

그러나 중국이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이와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중국의 약속은 원칙 그 자체보다 상황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합의가 체제 안정과 국가 이익에 부합하면 지켜지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재해석되거나 유보된다. 중국에서 합의는 고정된 계약이라기보다 조건부 이해에 가깝다.

중국은 규칙을 존중하지만 규칙 자체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국제 규범이나 조약, 합의 역시 절대적 기준이라기보다 활용 가능한 도구에 가깝다. 이는 중국이 규칙을 무시해서라기보다 규칙을 상황에 따라 해석하는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신성한 대상은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중국 내부에서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환경이 바뀌었는데 과거의 합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신뢰 훼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인식의 차이가 중국을 ‘믿기 어려운 파트너’로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중국은 약속을 어길 때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해석을 바꾸거나 집행을 늦추거나 조건을 재설정하는 방식을 택한다. 형식은 유지하되 실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합의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며 이는 중국 사회에서 중시되는 체면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중국의 신뢰 개념은 개인적·도덕적 신뢰와도 다르다. 중국에서 신뢰는 보편적 가치라기보다 관계적 자산에 가깝다. 신뢰는 특정 관계 안에서만 유효하며 국가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약속의 의미를 상대국과의 관계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와 ‘경쟁자’를 분명히 구분한다. 파트너에게는 유연성을 보이지만 경쟁자에게는 약속의 의미를 축소 해석한다. 이 구분은 공식 문서보다 실제 행동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의 신뢰는 무차별적이지 않다.

중국의 예측 가능성과 낮은 신뢰도는 동시에 존재한다. 중국이 어떤 사안에서 강경해질지, 언제 물러설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합의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이는 중국이 불성실해서라기보다 신뢰를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신뢰를 단기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장기 관계의 산물로 본다. 충분한 시간과 상호 의존이 축적돼야 신뢰가 형성된다고 인식한다. 반대로 말하면 신뢰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건이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혼란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합의의 문서화와 제도화를 신뢰의 핵심으로 본다. 그러나 중국은 그 합의가 어떤 관계 맥락 속에서 이뤄졌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기대와 결과 사이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을 상대할 때 중요한 것은 신뢰를 전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을 기반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중국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계산할 대상이다. 감정적 신뢰가 아니라 구조적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행동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질적 대응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도덕보다 안정과 이익을 우선한다. 이 기준이 변하지 않는 한, 중국의 행동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중국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나라가 아니다. 다만 약속의 유효 기간과 범위를 다르게 설정할 뿐이다. 이를 이해하면 중국의 행동은 배신이 아니라 조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 조정이 항상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평가와 별개로 작동한다.

중국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일관된 국가 논리다. 중국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관계 중심의 약속 문화다.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이해할 때 중국은 더 이상 모순적인 존재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질문은 ‘믿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관리할 수 있는가’다. 신뢰를 기대하면 실망이 반복된다. 그러나 예측 가능성을 활용하면 불필요한 충돌은 줄일 수 있다.

중국은 예측 가능한 나라다. 그러나 신뢰는 조건부다. 이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중국은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을 제대로 아는 출발점이다.


0개의 댓글
0 / 300
댓글 더보기
우리은행
NH
태광
하나금융그룹
우리은행
여신
한화
KB손해보험
종근당
다음
이전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