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1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두산중공업 자구안을 제출했다. 구체적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산그룹은 경영정상화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동화 가능한 모든 자산에 대한 매각 의지를 내비쳤다.
올해 두산중공업이 상환해야 하는 사채(회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는 1조2435억원이다. 당장 급한 것은 이달 27일 만기가 도래하는 6000억원이며 나머지도 오는 6월 중 대부분 만기가 도래한다.
두산그룹은 그간 자구노력을 지속했지만 계열사 전반 신용등급은 개선되지 않았다. 사실상 시장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다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했다. 이번 자구책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두산솔루스와 퓨얼셀 매각, 총수 일가 사재출연과 구조조정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두산그룹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은 자산매각과 사재출연이지만 유동성 확보 방안으로 부족하다.
지난해 말 기준 두산중공업 단기차입금은 3조7673억원, 유동성장기부채는 3조2655억원이다. 2조원 규모 현금성자산(금융자산 포함)을 감안해도 5조원에 달하는 부채 압박은 여전하다. 자구안과 국책은행 지원을 통해 약 2조원을 확보해도 3조원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고민이 따른다.
두산중공업이 위기에 몰린 배경은 그룹 내 실질적 지원 주체라는 데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형태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지주사인 두산이 존재하지만 지배구조상 지원범위가 제한적인 탓에 두산중공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두산건설은 차치하더라도 그간 효자 노릇을 했던 두산인프라코어가 기계업황 둔화로 고전하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이 ‘탈석탄·탈원전’ 정책으로 불리한 수주환경에 직면한 가운데 계열사 실적 부진은 우려를 더욱 가속화했다.
높아진 재무위험은 두산은 물론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의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산중공업이 반드시 체질 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다.
현금흐름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두산중공업 현금성자산이 늘어난 시기는 2017년(5976억원)과 2018년(1052억원)이다. 이중 2017년 영업활동현금흐름과 투자활용현금흐름은 유사했다. 반면 재무활동현금흐름은 7036억원 증가했다. 대규모 차입을 한 결과다. 즉 2018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은 배당이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두산중공업 최대주주는 두산(44.86%)으로 배당 절반가량이 지주사로 가게 된다. 두산 최대주주는 총수일가로 47.24%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은 2016년 2319억원, 2017년 1928억원, 2018년 2424억원, 2019년 1716억원 각각 배당을 했다. 2018년 3405억원 대규모 적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보면 큰 문제는 없다. 자체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던 솔루스와 퓨얼셀도 실적호조에 한 몫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투자활동이 증가해 현금성자산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지속됐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자금조달과 공급과정에서 등락이 워낙 불규칙해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며 “그간 자산 매각 혹은 기업공개 등을 통해 보완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재무 전반 관리능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과정에서 펀더멘탈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도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는 두산솔루스는 두산이 16.8%, 총수일가가 3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50%가 넘는 지분가치는 약 6000억~7000억원 수준으로 전망되나 두산에 유입되는 자금은 약 2000억원에 불과하다. 총수일가가 사재출연을 약속했지만 자산매각에 따른 자금유입, 그간 배당 등을 고려하면 온전한 ‘희생’이라고 보긴 어렵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배당은 주주가치 제고 일환이지만 기업이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만약 두산이 수직 지배구조가 아닌 각 계열사를 직접 보유한 형태였다면 현 상황보다는 다소 나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업황이 어렵고 투자효율성을 높이지 못하는 가운데 배당을 지속했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은 우선 자산매각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 방안에 주력하고 지배구조 개편은 그 이후 얘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두산그룹 유동성 문제가 단기 내 해소될 이슈가 아닌 만큼 지배구조 개편 내용도 검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여타 업계도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어 국책은행도 상당한 부담”이라며 “국책은행이 두산그룹에 제시하는 조건도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