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대담 : 주진 선임기자, 정리 : 이범종 기자 ]
" 4차산업혁명 시대, 혁신융합기술이 계속 쏟아지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IT와 금융의 융합이라든지 융합적 측면이 강화되고 있지요. 어느 때보다 정확한 기술가치 평가와 신지식 재산권 보장이 중요하게 됐어요. 그러려면 기술 분야를 잘 이해하는 이공계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변리사의 강점이지요."
홍장원(46)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산업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변리사도 전문화·세분화되는 추세"라며 "변리사가 가장 힘든 것은 기술을 계속 연구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을 이해해야 기업과 일할 수 있기 때문인데 과연 비전문가들이 이 같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홍 회장은 "기술의 진보로 지식재산권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변리사의 영역은 더 줄고 있다"며 "최근 5년간 다른 자격사나 비전문가들이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 산업 발전과 기업소비자의 올바른 선택권을 위해서라도 이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변리사에 맡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기술 강국 근간인 연구개발(R&D) 결과를 특허가 지켜주지만, 이 권리를 대변해 줄 변리사의 처우는 20세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기업 R&D 설계부터 변리사가 참여하면 세금·예산 절약과 변리사 처우 개선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직역 다툼? 본질은 기술 전문성”
40대 후반인 홍 회장은 대한변리사회 74년 역사상 최연소 회장이다. 지난 달 회원 과반 이상(54.7%) 지지로 당선됐다. 그에게 주어진 임기 2년은 결코 길지 않다. 비변리사들의 특허 분석과 침해 대응 업무에 대처해야 하고 불합리한 수수료 관행도 고쳐야 한다.
그는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국가 산업 기술 기여 측면에서 변리사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2009년 로스쿨 도입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변호사들과의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 해 12월 3만번째 변호사가 등록됐다. 변호사 자격자에게는 세무사와 변리사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진다. '밥그릇 싸움'으로 불릴만큼 각 단체들 간 신경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변리사 등록자는 16일 기준 9891명(휴업 6014명)에 불과하다. 변리사 자격 있는 변호사와 특허청 공무원 출신을 합친 숫자다. 홍 회장은 변협과 다툴 것은 다투고 협력할 점은 협력한다는 입장이다.
변협과 협력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가 비전문가의 산업재산권 관련 감정이나 해외 출원 등을 위한 자문·알선 규제 법안 통과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2017년 해당 내용으로 대표 발의한 ‘변리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3년째 국회에 계류중이다.
“변협이 해당 법안에 있는 ‘비전문가’에 변호사가 포함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는 다른 법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단서가 있거든요.”
한편으로는 특허 관련 민사 소송에서 변호사와 정당하게 경쟁할 근거를 마련한다는 각오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변호사에게만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허용한 현행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특허침해 소송은 고도의 법률지식과 공정성, 신뢰성이 요구되기에 민사법상 변호사 소송대리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변리사 업계에서는 누구보다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변론해야 기업은 물론 국가 산업 보호에 이롭다는 주장이 이어져왔다.
“제3자인 소비자 목소리를 반영하면 우리가 (특허 관련 민사 소송 대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변호사 중에도 변리사의 협력을 원하는 분이 많아요. 제가 과거 일본과 중국 기업 소송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변론을 못 하니까 로펌에 가서 처음부터 변호사에게 다시 설명해 줘야 했죠. 변리사 직업이 탄생한 영국과 이웃 중국은 변리사가 단독으로 소송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변호사와 공동으로 변론하고요. 일각에선 미국의 ‘특허 변호사’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특허 변호사 하려면 이공계 출신이어야 합니다. 패턴 바 시험(Patent Bar Exam)도 봐야 하고요.”
홍 회장도 국내에 특허 소송을 잘 하는 변호사가 많다고 인정한다. 문제는 이들 중 대부분이 비용이 비싼 서울 소재 대형 로펌 소속이라 지방과 중소기업 입장에선 변리사에게 소송을 맡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변리사에게는 공동소송권이 없다.
“한 기업의 특허 업무를 10년 간 처리해온 변리사에게 소송을 맡기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처음 보는 변호사에게 가는 게 편할까요? 특허 출원·유지 비용은 변리사가 받는데 소송도 맡으면 비용을 크게 부르지 않겠지요. 기술 설명도 새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딱 보면 내용을 알거든요.”
19대·20대 국회에서는 중견·중소기업의 특허 소송 분쟁을 해결하려면 변리사에게도 공동소송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 “이 기술 이미 있다” R&D 세금 낭비 막아
영국 산업혁명의 힘은 특허에서 나왔다. 기술에 능통한 변리사가 기업과 정부 R&D를 뒷받침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거세지는 이유다. 그러나 변리사업계의 특허 수수료는 10여년째 150만원선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 동남아 국가들만 해도 특허 수수료는 700~800만원 선이다.
홍 회장은 제3자의 펭수 상표권 등록에 변리사가 관여한 부분 역시 변리사 처우 문제와 연관이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제도와 업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 그랬느냐’ 하기 보다는 환경 개선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리사 일탈을 막으려면 특허청에 있는 징계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행 변리사법에 따르면 변리사 징계권은 특허청장에게 있다. 변리사자격·징계위원회도 특허청에 있다.
그는 “비변리사도 차치하고 변리사 간 저가 경쟁을 불사했다”며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무료 상담, 저가 경쟁 등을 자제하는 풍토가 자리잡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홍 회장은 변리사업계의 저가 수임은 특허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해법 중 하나가 변리사의 R&D 기획 단계 참여다. 기존과 중복되는 기술이 무엇인지 꿰뚫을 줄 아는 변리사가 기획 단계부터 조언하면 예산 배정과 설계 단계부터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민간기업과 출연기관 모두 R&D 결과물은 특허입니다. 특허는 처음부터 결과물을 반영하는 것인데 다 쓰고 남은 예산으로 특허를 내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변리사는 어느 기술이 기존 기술과 중복되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기획이나 예산 배정, 연구 설계 단계부터 보탬이 됩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이 24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6%만 잘 돼도 성공이죠. 그 비율을 높이려면 첫 기획단계부터 변리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세금 낭비를 줄이는 데에도 꼭 필요합니다.”
홍 회장은 정부 기관마다 다른 지식재산권 관리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적재산권을 다루지요. 상표 디자인 특허가 무형 자산인데, 제일 잘 다루는 부서가 가온머리를 맡아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특허청이 잘 해왔습니다. 물론 특허청이라는 이름도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아요. 변화가 필요합니다.”
홍 회장은 자신이 내건 슬로건인 '강한 변리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집행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홍 회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면 회원들의 권익 증진으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홍 회장은 재임하는 2년간 급여를 협회에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인상이 예정됐던 회원 회비는 동결한다.
홍 회장은 “모두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미약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재임 기간 동안 변리사가 직면한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차근차근 그러나 철저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