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중국 현지 업체의 성장과 유럽업체의 프리미엄 전략 사이에서 현대·기아차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실적 부진이 처음에는 사드 보복으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 선호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폴크스바겐을 비롯해 혼다, 뷰익 등과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브랜드 선호도가 확연히 낮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 내 프리미엄 라인에서는 독일 완성차 3사 등 유럽차가 굳건히 버티고 있지만 보급형 라인에서는 지리자동차 등 현지 브랜드 수준이 상당히 올라선 상태"라며 "중국 소비자들은 보급형 대중차로 브랜드 이미지가 구축된 현대차를 현지 브랜드보다 20~30% 비싼 가격을 지불할 유인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랜드 정체성 외에도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SUV 트렌드 대응이나 신형 출시 등이 비교적 늦게 이뤄지면서 중국 내 소비자 니즈와 엇박자를 빚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일본 혼다가 지난 2003년 CR-V를 중국 시장에 선보이며 SUV 시장 선점에 나선 반면 현대차는 2017년 코나 등으로 뒤늦게 SUV 시장에 대응했다.
중국 상해에 거주하는 무역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동차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현대·기아차는 라인업이 많지 않아 기회를 잡지 못한 것 같다"며 "중국 내 보급형 전기차업체들이 수없이 많은 데다가 프리미엄차를 선호하면 테슬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만의 강점이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라인업을 기반으로 중국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올해부터 제네시스 진출을 본격화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지난 4월에는 중국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안리더'와 '아이신부두안'이라는 고객 케어 프로그램을 내놨다. 차량 구매 후 실직, 전염병, 사고 등 고객이 처한 상황이 변하면 차량을 교환 또는 반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현대차 측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자동차 구매를 주저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중국 판매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탑재 모델을 출시, 이를 기반으로 전기차 모델을 2025년까지 29종으로 늘릴 예정이다.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2025년까지 10%를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 관계자는 "중국 현지 자동차업체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진 데다가 젊은층의 유럽차 선호 현상이 강해져 시장 포지셔닝이 과거에 힘들어진 상황"이라며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전략과 함께 중저가 라인의 3, 4선 도시 확대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