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지난 26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아시아나항공 매각 관련 의견을 나눴다. 산은 측은 “구체적 논의는 없었다”며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의논했다”고 밝혔다.
산은은 내부적으로 HDC현산과 각각 1조5000억원씩 총 3조원 투자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산은 기존 2조5000억원 투자에서 1조원가량 부담을 덜게 된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영구전환사채(CB, 8000억원)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추가로 7000억원 규모 영구채 인수도 고려하는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막대한 재무부담 탓에 부채 조달이 어렵다. 유상증자 등 자본형태로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지만 쉽지 않다.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새 주인을 만나 수혈을 받는 방법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확산으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HDC현산이 투입하기로 결정한 2조5000억원으로는 부족하다. 산은도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최소 3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산은이 검토한 내용은 고통 분담 취지다. 유력한 지원방안은 자본 형태로 인수자 지분율을 낮출 수 있는 신주는 아니다. 영구채가 이번 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영구채는 차입금이지만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산은이 영구채 매입을 고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나항공 자산유동화증권(ABS)이다. ‘색동이’ 시리즈로 발행되는 ABS 미상환 규모는 현재 5013억원이다.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은 ‘BBB-, 불확실검토’다. 지난해 말 신용평가사들은 HDC현산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소식에 등급전망을 ‘긍정적’으로 부여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익성 불안, 재무안정성 약화 우려가 확대되자 지난 6월 기존 ‘긍정적’ 전망을 철회했다. 대규모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탈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불확실검토’ 대상에 오를 무렵 산은은 3000억원 규모 아시아나항공 영구CB를 추가로 인수했다. 지속적으로 자본형태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등급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한 단계만 떨어져도 투기등급(BB급 이하)으로 전락해 ABS 조기상환 트리거(trigger)가 발동되기 때문이다. 이때 투입해야 하는 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신평사들은 올해 안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등급 조정에 나설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등급 하향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영구CB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상환 시기를 HDC현산이 결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큰 틀에서 보면 산은이 HDC현산에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인수가격 조정과 영구채 형태 지원 두 가지가 전부다. 사실상 할 수 있는 제안을 모두 내놓은 셈이다.
결국 공은 HDC현산으로 넘어갔다. 거절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계약금 반환 소송 등으로 이어진다면 진정성 측면에서 발목을 잡힌다. 산은이 모든 패를 보여준 것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책임에 대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가진 아킬레스건은 사실 영구CB였다”며 “금리나 전환조건 등이 산은에 유리한 것은 물론 사모형태로 발행해 해당 정보를 산은이 독식하는 등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조원을 깎는 것도 파격이지만 산은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이 더 놀랍다”며 “HDC현산이 시간을 끌 수 있는 묘수가 없고 인수든 철회든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