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지난 3일 그룹 인사를 통해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임한다고 밝혔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두 기업을 한 인물이 수장을 맡아 이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풀이된다.
박 부회장은 지난 2011년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를 인수할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최근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부문 인수 추진에도 깊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사장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불린 이유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는 그룹 내 핵심계열사로 꼽히는 만큼 박 부회장 취임 후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SKT 중간지주 설립 탄력받을 듯
박 부회장은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중간지주사를 설립하는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 1월 CES에서 “(중잔지주사 설립을) 올해 안에 꼭 하려고 한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3월 "올해 안에 100%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SK와 SK텔레콤 합병을 두고 박 부회장이 양측 주주 동의를 충분히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SK텔레콤은 통신업 특성상 기업가치 상승이 쉽지 않다. 성장성보다는 안정성 이미지가 강하고 막대한 설비투자와 배당 등으로 자금유출 규모가 큰 탓이다. 신성장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자회사 가치가 좀처럼 부각되기 어려운 구조다. SK텔레콤이 사명 변경을 고려한 이유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SK하이닉스도 SK텔레콤 자회사 중 하나다. SK텔레콤에 가치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으면서 모회사이자 그룹 지주사인 SK㈜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이번 인사에서 박 부회장이 SK하이닉스까지 총괄하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는 것은 SK텔레콤의 중간지주 설립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최종 단계는 SK와 SK텔레콤 투자회사(중간지주) 합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배구조가 완성되면 SK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신사업들을 직접 지배하는 형태로 바뀐다. 통신, 정유, 화학 등 전통산업 이미지가 강한 SK그룹 체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6만6504주 스톡옵션 보유···행사 시점 주목
박 부회장이 보유한 SK텔레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 가능성도 주목된다. 지난 2017년 3월 SK텔레콤은 박 부회장에게 총 6만6504주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행사기간은 ‘2019년 3월 25일~2022년 3월 24일’(기간1), ‘2020년 3월 25일~2023년 3월 24일’(기간2), ‘2021년 3월 25일~2024년 3월 24일’(기간3)이며 각각 2만2168주 행사가 가능하다.
행사가격은 ‘기간1’에 기준 행사가격, ‘기간2’는 기준 행사가격의 8% 할증, ‘기간3’은 ‘기간2’에 적용된 행사가격에 8%가 할증된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박 부회장이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수익도 높아지게 되는 구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박 부회장은 보유한 스톡옵션 전량을 내년부터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이번 인사와 그룹 지배구조 개편 속도에 시장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