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한국증시 대신 뉴욕증시 상장을 선택한 것을 두고 과도한 누적적자가 국내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기업 가치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잣대를 대는 국내보다 미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미국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도 뉴욕 상장을 선택한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쿠팡의 기업가치가 500억달러(약 55조1100억원)를 넘길 것으로 관측했다. 이는 국내 대형 유통업체인 이마트 시가총액인 4조9619억원보다 무려 11배나 높은 몸값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쿠팡의 높은 몸값 책정이 뉴욕 증시라서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증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상장 조건이 까다롭다. 코스닥은 상장 요건에서 사업 이익과 매출, 자기자본 등을 평가하는 '경영 성과 및 시장 평가' 항목이 있다. 쿠팡은 누적적자만 3조6000억원대에 달하는데, 상장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7년 1월부터 적자기업이라도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테슬라 요건'이 생겼지만, 기업 가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공산이 크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의 매출이 급성장 했지만 3조6000억원대 엄청난 누적 적자를 안고 있어 국내 증시에는 상장하기 힘들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평가 가치가 높아서 쿠팡 입장에서는 뉴욕 증시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차등의결권 때문에 쿠팡이 미국행을 선택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CEO에게 다른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인수합병 세력을 견제하고 의사결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장치다.
실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S-1)에는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 김 의장 보유 주식(클래스B)의 1주당 의결권은 일반 주식(클래스A)의 29배에 이른다. 지분을 2%만 가져도 58%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김 의장이 차등의결권을 확보함에 따라 상장 뒤에도 쿠팡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분율이 낮더라도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경영권 방어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고, 쿠팡의 공격적 투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유통업게에서는 차등의결권이 경영진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는 있지만, 결국 미국에 상장하는 것은 자본조달의 용이성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상의 쓰리알랩스 대표는 "쿠팡은 국내 상장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애초부터 미국 상장을 꾸준히 추진해온 회사"라며 "디저트가 맛있다고 코스요리 먹으러 가지 않는 것처럼 의결권과 같이 부수적인 요소로 미국 증시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