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두 차례 만남을 가졌다. 두 회장은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두 그룹 간 협업은 예상보다 적극적이지 않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전기차 플랫폼인 E-GMP 3차 공급물량에 삼성SDI 제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CATL만 이름을 올렸다.
삼성SDI가 명단에서 제외된 이유로는 가격이 꼽힌다. 현대차 입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으로부터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받는 가운데 각형이 주력인 삼성SDI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가격메리트 뿐이다. 현대차가 CATL(각형 주력)을 배터리 공급자 중 하나로 선정한 것도 중국시장 공략과 가격 조건이 충족된 탓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무역장벽을 쌓아놓고 있다.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현대차는 SK이노베이션(ITC 패소)과 중국산 배터리로 점유율을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지만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탑재 선언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가능성도 있다.
각형 배터리는 중국 기업들이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국내서는 삼성SDI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은 차치하더라도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공급망 확보 차원 삼성SDI와 협업은 중요한 사안이다.
삼성SDI는 테슬라가 원형 배터리를 탑재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과정에서도 각형 배터리의 미래가 더 밝은 것으로 내다봤다. 폭스바겐도 언급한 ‘전고체 배터리’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각형이다. 배터리 성능 향상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차세대 배터리 시장까지 멀리 내다보고 있는 셈이다.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도 선언한 만큼 현대차 입장에선 대응이 필요하다.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는 국면에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가격인 탓이다.
한편,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만드는데 뜻을 같이 했다. 반도체 제조 업체 입장에서 자동차용 반도체는 마진이 크지 않아 기피 대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협력을 하는 이유는 시장점유율 선점을 통한 여타 사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있다.
삼성SDI와 현대차 협력도 한 단계 더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공급망 등을 당장 변경하기는 어려워 점진적 개선이 예상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전에는 파우치형을 제외하고 각형과 원형에만 주력하는 삼성SDI가 상당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며 “전기차 시장 초기에는 성능보다는 가격이 중요한데 이를 삼성SDI가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각형 배터리 또한 제조방식 변경으로 에너지밀도가 높아지는 등 단점을 보완하고 있어 파우치형 대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