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금융은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자원 및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환경 개선 상품 및 서비스 생산에 자금을 공급해 국가 전체의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금융체계를 의미한다.
특히 보험산업은 기후변화 영향이 큰 산업인 만큼, 기후 리스크 대비에 대한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해외 보험업계는 기후변화 대비에 나서 주기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국내 보험업계도 기후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오고 있다.
◆ 다가오는 기후위기…TCFD 도입 박차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위기의 심각성이 강조되면서 국제기구들도 기후변화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권고안을 발표하고, 기후변화 리스크에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후변화 영향을 재무적으로 분석해 공시하는 기후변화재무공시(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이하 TCFD) 규제가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기후 리스크 관리 금융제도화의 시작은 2017년 6월이다. 당시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시 태스크포스(TF)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어 2020년 5월 금융시스템녹색화네트워크(NGFS)는 금융감독을 위한 기후환경 리스크 관리 가이드를 발표해 금융회사의 재정건전성 감독 시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했다. 이후 영국 정부를 비롯한 비영리단체들의 TCFD 공시 가이드라인과 모범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영국 정부는 기후변화 관련 이슈를 2021년 10월부터 매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결과 금융회사들이 권고안에 따라 공시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선언하는 등 주주행동주의가 확대됐다. TCFD는 기업들에게 단순한 규제 이상의 압력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제 금융기관들이 녹색금융을 제도화, 규제화하면서 녹색금융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의무화, 생존의 문제로 떠올랐다.
◆ 韓, 주요 금융사 위주 기후리스크 대응…”업계 전체로 확산해야”
민간 부문인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들도 녹색금융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 중 KB금융그룹은 2018년 TCFD 지지기관으로 가입한 후 권고안을 이행하고 그 결과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특히 KB금융은 TCFD 전략의 일환으로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해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그룹도 TCFD 전략을 채택했다.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내부 탄소배출량과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배출량을 산정해 탄소중립에 대응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2050년까지 그룹이 보유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편 TCFD가 업계 전체로 확산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금융업계의 경우 일부 금융지주회사 중심으로 TCFD 기반 공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사 등은 실질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책당국이 TCFD 기반 공시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관련 인적자원 양성과 업종별 TCFD 공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국제적 수준의 선진적 기후 리스크 관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명확한 이행 로드맵과 실행 가이드를 제공하고, 내부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적, 기술적 기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들도 TCFD 이행을 위한 사전적 준비 작업을 조속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보험업계도 기후리스크 대비 ‘발동’
보험사에게 기후 리스크는 자산 및 부채 평가와 사업계획 및 전략적 목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리스크가 큰 손해보험사가 생명보험사보다 기후 리스크 영향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사는 기상 이변에 따른 재난으로 심각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리스크와 관련해 보험연구원은 지난달 29일 ‘기후위기와 보험산업’ 세미나를 열고 보험산업의 기후 리스크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민환 인하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19년 15개국 1170개 보험사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보험사 73%가 기후변화가 향후 영업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보험사의 국제 기후변화 대응 권고안에 대한 인식이 다른 금융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의 33% 이상은 TCFD 권고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해외 보험업계는 일찍부터 기후 리스크 영향을 예상하고 대비에 나섰다. 실제 해외 보험사들은 기후 리스크 관련 보고서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국내 손해보험사들은 ‘기후 리스크’ 대응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화재는 자연재해별 예상 손실 평가 모델을 개발해 자연재해에 따른 예상손실액을 평가하는 등 업무에 적용했다. 현대해상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교통기후환경연구소를 설립했다. 손해보험사 경영활동과 직결된 환경위험을 식별하고 기후 관련 연구를 수행한다.
DB손해보험은 매 분기마다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개최해 기후변화 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환경경영 정책 수립, 환경 상품 개발, 탄소 중립계획 수립 등이 진행된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기후 리스크 대응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나 금융회사들이 기후변화 대응이나 탄소 중립 목표를 발표하고 회사 추진 성과를 공개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기 중 이산화탄소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기업들이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보험사 이사회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책임성, 전문성, 구성 등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보험사는 기후변화 리스크를 보험인수, 상품개발, 손해사정, 보험금 지금 등 활동 전반에 적절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발표자 한재준 인하대 교수는 보험산업의 기후리스크 관리방안을 설명했다. 한 교수는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보험사는 사업목표와 전략에 기후 리스크를 고려해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리스크 환경과 리스크 해결 방법 식별 등을 목표로 하는 내부 리스크 위원회나 기구 설치를 강조했다. 또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한 지표∙목표∙한계 설정의 중요성을 밝혔다.
이 외에도 보험사는 기후 리스크를 내부통제 시스템에 포함하도록 하는 지배구조 프레임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보험사는 △리스크관리 부서 △준법감시 부서 △내부감사 △적격성 심사 △아웃소싱 등 5개 부문을 통해 기후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기후 리스크가 보험사 자산운용의 리스크에 미치는 위험을 데이터를 통한 시나리오 기법 등을 사용해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며 "또 시장참가자들이 보험사의 비즈니스 활동, 위험, 성과 및 재무 상태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성 높고 포괄적인 정보를 적시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