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올 상반기(1~6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비상하던 정유업계가 결국 1440원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에 추락하고 있다.
급격한 경기 침체 속에 나타난 환율 급등이 환차손을 불러온 것이다. 여기에 상반기 최대 실적을 견인한 정제 마진과 국제 유가마저 하락하며 '삼중고'를 겪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계속되고 있는 고환율로 정유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해외 원유 매입은 정유사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환율이 올라가면 정유업계 환차손이 높아진다. 정유사들은 원유 매입 자금을 일정 시차를 두고 현 시점 환율로 계산해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상반기 보고서에서 환율이 5% 오르면 302억원 규모의 영업외손실이 생긴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70원 오른 1438.7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원 오른 1425.5원에 출발한 뒤 장중 1440.7원까지 오르며 지난 26일 기록한 연고점(1435.4원)을 경신했다.
정유업계의 악재는 고환율 뿐만이 아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 상반기 호실적을 이끈 정제 마진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9월 둘째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전주(8..4달러)보다 5.7달러 떨어진 배럴당 2.7달러를 기록했다. 7월 셋째 주 3.9달러를 기록한 이후 정제 마진이 4달러 밑으로 떨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제 마진은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각종 원가 등을 제외한 금액으로 정유사의 수익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정제 마진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이다.
국제 유가 하락세도 정유업계의 실적 부진에 한 몫 하고 있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16일 85.11 달러에 비해 6달러 이상 떨어진 배럴당 78.50 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6월 8일 기록한 연중 고점(122.11달러)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하락한 숫자다.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원유를 사 온 뒤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2~3개월의 시차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유가가 떨어질 경우 미리 비싼 값에 사들인 원유의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 현대오일뱅크는 이례적으로 투자 중단 결정을 내렸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3600억원 규모의 상압증류공정(CDU), 감압증류공정(VDU) 신규 투자를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정유 4사 중 조 단위 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투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유사들이 지난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 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환율과 유가는 회사가 노력한다고 바뀌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좋아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