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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아이들 웃음 넘쳤을 레고랜드, 어쩌다 '돈 먹는 하마' 됐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성상영 기자
2022-11-08 00:00:00

레고 밟은 듯 비틀대는 한국경제 ②

김진태 '가벼운 입'에 드러난 부실

사업 초기부터 '삐걱'…흥행도 실패

'레고랜드 사태' 기존 위기와는 달라

강원 춘천시 중도에 지난 5월 5일 문을 연 레고랜드코리아 리조트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는 지방정부가 보증한 채권조차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겼다. 시장은 동요했고 기업 자금줄은 막혔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할 자리에는 기업의 비명만 가득하다. 인구 160만 명 지방자치단체 수장이 내뱉은 한 마디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레고랜드코리아 리조트(레고랜드)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지난 5월 개장한 테마파크다. 레고 장난감을 형상화한 건물과 조형물, 놀이기구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건설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기대를 모았다. 사업 시행자는 강원도가 출자한 강원중도개발공사(중도개발공사), 운영사는 레고랜드코리아 유한회사다.

레고랜드 건설 사업은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이 사업은 2011년 9월 강원도와 영국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며 시작됐다. 본격적인 테마파크 건설에 앞서 청동기 유적이 묻힌 것으로 예상돼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그 결과 2014년 7월 청동기뿐 아니라 선사시대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적이 한반도 최대 규모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사업이 중단됐다. MOA를 체결할 때만 해도 2015년에 레고랜드가 문을 연다는 계획이었으나 유적 발굴이라는 변수가 터지며 착공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급기야 2015년에는 삼국시대 유적까지 발굴됐다.

공사가 미뤄지며 사업비는 급증했다. 중도개발공사는 2020년 2050억원에 이르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를 발행하고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다. ABCP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어음을 발행할 때 신용도가 높은 기관·기업이 빚 보증을 해주는 방식이다.

레고랜드 건설 사업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추진됐는데 중도개발공사는 PF 대출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ABCP를 발행했다. 민간 기업이 발행했다면 부도 위험이 매우 컸겠으나 강원도가 보증을 서며 안전한 어음으로 간주됐다.

레고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사업 추진 11년 만인 올해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문을 열었다. 강원도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이 레고랜드를 찾고 생산 유발 효과는 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레고랜드는 비싼 입장료에 비해 볼 게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부족한 연계 교통편과 편의시설, 빈번한 놀이기구 고장, 장기 휴업에 들어가는 등 배짱 운영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도개발공사는 ABCP를 상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중도개발공사의 기업 회생을 강행하며 사실상 지급보증 철회를 선언했다. 2050억원을 대신 내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신용도가 최상인 지자체 보증 채권이 부도 나는 초유의 상황이 빚어졌다.

채권시장은 심하게 흔들렸다. 기업은 신용도와 무관하게 회사채 발행에 실패했고 이는 공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PF로 아파트 재건축·신축 사업을 진행한 건설사는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50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으나 시장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여파,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꺼번에 겹친 상황에서 국내 리스크(위험)까지 터지며 경제 위기론이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의 과도한 차입 경영이 문제였던 1997년 외환위기와 저신용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원인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또 다른 양상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채권에 대한 신뢰 하락과 부동산 PF의 부실 위험 증가로 이어졌다. 건설사 도산 우려도 문제지만 부동산 PF 대출을 많이 해준 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의 연쇄 부실이 우려된다.

이를 막기 위해 공적 자금을 무한정 투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기조와 엇박자가 날 수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려 유동성 회수에 나서는데 정부가 섣불리 자금을 풀기는 어렵다.

대기업은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중견 건설사를 비롯해 신용도가 낮고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연말과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황을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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