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1. LG화학과 ㈜한화는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업체 고려아연과 각각 지분을 맞교환했다. 한화는 수소·암모니아·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고 LG화학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맞춰 북미 내 배터리 공급망을 탄탄히 다질 것으로 기대한다.
#2.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지속가능연계차입(SLL)을 통해 4750억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자금은 울산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 단지 조성에 사용된다. 플라스틱 재활용과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하면 금리가 낮아져 금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미래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간 합종연횡은 이제 흔한 일이다. 또한 치솟는 대출 금리에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까지 어려워지며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건 기업이 늘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 전략도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전략적 제휴론 부족…업종 불문 '혈맹' 맺기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화학과 ㈜한화는 고려아연과 장외 거래 등을 통해 주식을 맞교환했다. LG화학과 고려아연이 교환한 주식 총액은 2600억원 규모, ㈜한화와 고려아연이 주고 받은 주식 총액은 1600억원에 이른다.
LG화학은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기주식 39만1547주를 확보했다. ㈜한화는 고려아연 주식 23만8358주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LG화학과 ㈜한화는 각각 고려아연 지분 1.7%와 1.2%를 보유하게 됐다. 고려아연은 LG화학 주식 36만7529주와 ㈜한화 주식 543만6380주를 취득했다.
LG화학과 고려아연은 미국에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구축한다. LG화학은 IRA의 생산지 요건을 충족하는 양극재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를 고객사로 확보한 LG화학에 광물을 공급하면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화학은 미국 테네시주(州)에 연간 생산능력 12만 톤(t) 규모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7월 인수한 미국 라사이클링(재활용) 기업 이그니오를 통해 폐전자제품에서 리튬과 니켈 등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LG화학과 고려아연은 전구체를 연결고리로 삼았다. 지난 6월 출범한 합작법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는 울산 온산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짓고 있다.
전구체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을 결합한 물질로 배터리 양극재 재료비의 70%를 차지한다. 광물에서 양·음극재, 배터리셀과 팩, 전기차로 이어지는 생태계에서 광물과 양극재 중간 단계에 있는 품목이다. 전구체는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배터리 제조사가 IRA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
수소·암모니아와 재생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한화에게도 고려아연은 놓칠 수 없는 파트너다.
고려아연은 호주에서 암모니아를 들여와 국내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전력 생산에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화는 인프라 건설을 맡음으로써 수소 관련 기술을 실증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한화와 고려아연은 이외에 풍력 발전, 탄소 포집, 해외 자원 개발 등에서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기업 간 지분 맞교환은 단순히 전략적 제휴를 넘어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협력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피와 살이나 다름없는 주식을 서로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혈맹'을 맺은 것으로도 여겨진다. 특정 사업을 매개로 맺는 협력 관계는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면 생명력을 잃지만 지분 맞교환은 어느 한쪽이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는 관계가 유지된다.
최근에는 업종 경계를 넘어 지분을 교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KT는 지난 9월 7500억원 규모 주식을 서로 교환했다. 두 회사의 교집합은 미래 모빌리티 핵심인 자율주행이다. 이보다 앞서 7월에는 SK텔레콤과 하나금융그룹이 4000억원대 지분 교환을 통해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가 연결고리다.
사업 이외에 기업 지배력을 둘러싼 대립에서도 지분 맞교환이 변수로 작용하곤 한다. 경영권 분쟁에서 지분을 교환한 기업이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과거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기며 적대적 인수합병(M&A) 우려가 나오자 현대중공업, 동국제강, KB금융그룹 등과 지분을 교환해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있다.
고려아연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관측이 나온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일가가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하는데 최근 두 가문 간 지분 경쟁에 불이 붙었다. 최근 고려아연 지분을 취득한 LG화학과 한화, 한국투자증권, 모건스탠리, 한국타이어 등을 최 부회장 측 우호 주주로 분류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간 지분 맞교환을 통해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만드는 동시에 지배력을 공고히 다지는 이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합종연횡이 계속되면서 서로 주식을 교환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SG채권·지속가능차입, 고금리 해법으로 각광
자금 조달 방식의 다변화도 기업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와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에 따른 한전채 발행으로 자금 유동성이 악화하는 '돈맥경화'가 우려되자 많은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채권과 SLL로 눈을 돌리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SK지오센트릭이 4750억원을 3년 만기 SLL로 조달해 눈길을 끌었다. SK지오센트릭은 국내 최초로 노르웨이에 있는 국제 인증기관인 노르셰 베리타스(DNV)로부터 친환경 목표에 대해 검증을 받은 뒤 프랑스 BNP파리바은행 등 5개 글로벌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확보했다.
SK지오센트릭은 SLL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오는 2025년까지 울산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21만5000㎡(약 6만5000평) 규모로 조성되는 공장은 연간 25만t에 이르는 폐플라스틱을 처리해 플라스틱 원료로 환원한다. 이와 함께 2019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5년까지 24.9%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하며 SLL에 성공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이 부담할 금리는 연 5% 초중반대로 알려졌다. 만기가 1년~1년 6개월인 단기 회사채 금리가 8% 안팎, 3년짜리 회사채 금리도 6~7%대인 점을 고려하면 저렴한 수준이다. 금리가 수개월째 오르면서 기업이 국내 은행에서 직접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7% 이상은 각오해야 한다.
앞서 LG화학은 지난 7월 3억 달러(약 4000억원) 규모 그린본드(녹색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수요 예측을 진행한 결과 전 세계 81개 기관 투자자로부터 10억 달러에 이르는 매수 주문을 받으며 3대 1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만기는 3년, 금리는 연 4.436%로 시중 회사채 금리보다 저렴하다. LG화학 이외에도 현대중공업, 포스코, 한화솔루션 등 다수 기업이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그린본드와 같은 ESG채권이나 SLL 모두 환경·사회적 기여를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특히 탄소중립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기관이 탄소 배출량 감축과 연계해 ESG채권 발행과 SLL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ESG채권의 경우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에서 기업이 '그린워싱'을 일삼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그린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서도 광고나 언론 보도를 통해 친환경 경영을 한다고 위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때문에 ESG채권 발행 목적을 외부 기관을 통해 면밀히 검증하고 사후 평가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SLL은 검증과 감시가 강화된 대출 수단이다. 채권시장에서는 ESG채권의 한계점을 보완한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이 새롭게 조명받는 추세다. IB 업계에서는 고금리와 채권시장 경색이 당분간 이어지는 만큼 SLL이나 SLB 발행으로 현금을 충당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