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패스트패션의 열풍을 타고 인기를 누렸지만 H&M은 최근 들어 환경 오염의 주범이란 오해를 자주 사고 있다. 패스트패션 특성 상 유행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빨리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가운데 H&M은 2050년 이전에 넷제로(net zero·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표적인 스파 브랜드인 만큼 업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린다.
◆RE100 가입 부터 스코프 3 관리까지..."기후 포지티브 추구"
H&M을 비롯해 코스(COS), 위크데이(WEEKDAY) 등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H&M 그룹은 최근 들어 '기후 포지티브(Climate Positive)'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탄소 순배출량이 마이너스인 상태를 만드는 정책인 '탄소 네거티브'를 넘어 2040년까지 기후에 긍정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의 광범위한 기후 대응 목표인 넷제로 수준을 앞서는 목표다.
실제로 H&M은 기후 포지티브의 세부 전략으로 2030년까지 절대적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배출량 대비 56%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2030년까지 제품 생산 시 100% 재활용 재료 또는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조달된 재료를 사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까지 조달한 재료 중 64.5%를 친환경 재료로 전환했다.
RE100에도 이미 가입한 상태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이미 지난 2020년 제품 생산을 위한 전기량의 90%를 재생 에너지로 활용한 H&M 그룹은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을 100%까지 조기 달성할 수 있도록 RE100에서 정한 기준을 따른다는 방침이다. 유통 공급망에서 효율성을 개선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특히 제품 생산부터 유통까지 밸류체인을 신경써야 하는 패스트패션 특성에 맞게 전반적인 유통망에서의 탄소 배출량까지 신경쓰는 모습이 눈에 띈다. 2025년까지 직물 생산, 의류 제조, 원자재 및 업스트림 운송에서 발생하는 절대적인 스코프 3(Scope 3) 배출량을 2020년 대비 10% 줄이기로 한 게 대표적인 계획이다.
통상 탄소중립에는 GHG 프로토콜(온실가스 회계 처리 및 보고 기준)에서 정의한 스코프(scop) 개념을 들어 탄소 배출을 분류, 관리한다. 스코프 1은 기업이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배출하는 탄소량을 뜻한다. 공장을 가동할 때 나오는 매연이나 화학물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스코프 2는 직접 배출 개념인 스코프 1과 달리 간접적인 탄소 배출을 뜻한다. 기업이 활용하고 있는 냉난방으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 등이 스코프 2에 속한다. 스코프 3은 소유 자산을 제외한 간접 배출을 뜻한다. 협력사 등과 같이 해당 기업 이외에서 배출하는 탄소량과 온실가스 등이 스코프 3에 포함된다.
스코프 3는 스코프 1, 스코프 2와 달리 관리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스코프 1과 스코프 2는 그나마 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를 활용해 기업이 스스로 탄소 배출량을 조정할 수 있지만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들 상황까지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탓이다. 내년께 완료될 예정인 ESG 국제 공시 표준화 작업에서도 스코프 3 포함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H&M 그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새로운 옷을 재활용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대여 및 구독 서비스 등을 통해 절대 낭비되지 않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투자했고 직물 재활용 기술에서도 큰 발전을 봤다"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투자를 개발하고 확장하면서 나아갈 솔루션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이는 전체 패션 산업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프로그램·디지털 결제 도입 등으로 여성 인권 강화
H&M 그룹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인원만 약 150만명으로 대부분 여성 인력이다. 그룹 차원에서 전 세계 어디든 각국의 문화와 사회 규범, 법적 상황 등을 고려해 의류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와 복지를 제공하려고 하는 이유다.
일단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에 가입하고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WEPs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와 유엔여성기구가 지난 2010년에 공동 발족한 이니셔티브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여성 기업인 지원 등 여성 인권 보호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2021년 11월 현재 전 세계 약 5600명의 CEO가 이 원칙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17개 지속가능목표(SDGs) 가운데 다섯 번째 항목인 '양성 평등 달성'과 관련, 2030년까지 여성·소녀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양성 평등이란 회사 가치에 따라 전 세계 직원의 76%를 여성으로 채용하고 있다. 여성 임원 비율도 72%에 달한다.
벨류체인에 있는 각 국가의 특성에 맞게 여성 능력 강화 프로젝트도 별도로 운영 중이다. 캄보디아에서 운영 중인 베터 워크(Better Work)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노동자 대표로서의 여성 리더십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적 선출 방식으로 여성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베터 팩토리 캄보디아(BFC)도 지원한다. BFC는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은행그룹의 일원인 국제금융공사(IFC) 간 파트너십으로 설립된 프로그램으로 근로자와 고용주, 정부와 협력해 근무 조건을 개선하고 의류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는 방글라데시에서 기어(GEAR·Gender Equality And Return)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공급망 내 여성 근로자가 감독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경력 발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기어 프로그램에 등록된 공급업체 공장은 27곳으로, 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권한을 부여 받아 리더십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기술을 교육 받을 수 있다. 2021년 한 해에만 156명의 여성 근로자가 교육을 받고 87명의 여성 근로자가 승진했다.
이와 별개로 방글라데시에서 생산 공급망 내 디지털 결제로 전환을 가속화한 것도 양성 평등 정책의 일환이라는 게 H&M 그룹 측의 설명이다. 다소 사회 변화 속도가 느린 방글라데시 상황을 고려할 때 디지털 결제를 통해 여성들의 자신의 돈을 직접 관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 말 기준 방글라데시 내 공장의 91%가 디지털 결제 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디지털 결제를 도입했던 2017년 당시 40%만이 디지털 방식으로 임금을 지불했던 것에 비하면 전환률이 2배 이상 넘어선 것이다.
회사 측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여성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했던 참가자와 공장 관리자들은 모두 교육을 통해 얻은 '소프트 스킬'이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말한다"며 "디지털 결제로 전환하면서 여성들 자신이 다량의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더라도 직접 자산을 관리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