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는 ESG 경영 관련 정책이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른바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이 마련될 예정이어서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공시 의무가 엄격해진다. 유럽의 탄소 중립 정책이 고도화되면서 철강·전자기기·반도체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달라지는 ESG 경영 관련 트렌드를 짚어봤다.
①상반기 내 ESG 글로벌 공시 기준 확정
ESG 국제 공시 표준화 작업을 주도해왔던 국제회계기준재단(IFRS)이 상반기 내 ESG 국제 공시 기준 표준 격인 'IFRS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을 확정, 공개할 예정이다. 그간 난립해왔던 ESG 평가 기준을 단일화해 포괄적인 글로벌 기준을 마련하고 일반인들도 쉽게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IFRS는 지난 2021년 11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ESG 공시 기준 제정을 추진해왔다. ISSB는 지난해 3월 IFRS S1(일반 공시)와 IFRS S2(기후 관련 공시) 공개 초안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후 주요 국가를 돌며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다. 당초 2022년 말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지만 세부 내용을 다듬고 올해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쟁점도 적지 않다. 먼저 2025년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비재무정보의 재무 정보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해당 공시 기준을 모두 준수했을 때 발생할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범위도 문제다. ISSB가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공시 대상 기업들은 스코프(scop) 1·2·3 모두를 공시해야 한다. 스코프 3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도 설명해야 한다. 통상 탄소 중립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스코프는 GHG 프로토콜(온실가스 회계 처리 및 보고 기준)에서 정의한 탄소 배출 분류, 관리 개념이다.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탄소량(스코프 1)과 간접 배출하는 탄소량(스코프 2)에 이어 협력 업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탄소량(스코프 3)까지 공개하도록 한 것이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산업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ISSB는 지난해 12월 정례회의에서 ESG 국제 공시 기준이 공표된 이후 1년간 기업들의 스코프 3 공개 의무를 보류하는 데 합의했다. 기업의 비재무적인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평가 범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수용한 데 따른 것이라는 평가다.
스코프 3 공개 의무가 유예된 만큼 기업들의 부담도 경감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공시 표준화 작업이 진행중인 만큼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회의에서 ISSB 이사회는 스코프 2 배출 관련 에너지 구매 관리 관련 계약 문서에 대한 정보를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ISSB에서 만들고 있는 ESG 공시 기준은 향후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간 우후죽순 존재했던 ESG 평가 기준이 획일화될 수 있어 효율적인 기업 평가가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해당 공시 기준을 모두 준수했을 때 발생할 기업의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 신설되는 ESG 공시 기준 관련 전담 조직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한국회계기준원 내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설립하고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ESG 공시 기준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KSSB는 ESG 공시 기준과 관련 국제 논의에 대응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ESG 공시 활동을 지원하고 국내에 적용될 ESG 공시 기준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②공급망 실사법 확대로 韓기업 부담 고조 전망
올해부터는 공급망 실사법에 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늘어난다. 공급망 실사법은 평가 대상 기업의 전 공급망에 걸쳐 환경, 노동·인권, 지배구조 등 ESG 요인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2월 관련 지침 초안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ESG 리스크를 들여다보고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한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도 실사 적용 대상으로 꼽힌다.
시장 조사 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6년 공급망 관리 시장 규모가 약 309억 달러(약 39조 1503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평가 내용을 위반할 경우 매출 대비 부과하는 벌금 등이 포함되면서 2020년 대비 약 2배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EU 공급망 실사법은 법적 절차를 거쳐 2024년 공식 발효될 예정이지만 애플, 인텔 등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급망 실사에 나서면서 사실상 ESG 평가 방법론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 올해부터 발효되는 공급망 실사법(LkSG)의 영향력에 관심이 모아진다. 인권과 환경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공급망 전반에 실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올해부터는 근로자 3000명 이상인 기업, 2024년부터는 1000명 이상인 기업에 적용될 예정이다. 공급망 실사 의무를 위반할 경우 연간 매출액의 2%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밖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도 개별 조항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는 한국 기업들, 특히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 화장품, 제약, 바이오 등 관련 산업에 다수 진출해 있는 기업들도 공급망 실사법의 실사 의무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럽 공급망 ESG 실사법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법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지속적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라며 "특히 인력 및 재정 자원과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향후 수출 및 투자 유지 및 확대를 위한 체계적 정책 수립과 선제적 이행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③EU發 탄소세 징수...RE100 요건도 강화 예정
EU는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CBAM 도입을 통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하겠다는 탄소 중립 목표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EU는 2000년대 중반부터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도(ETS)를 운영해왔다. ETS는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에 상한선을 설정하고 한도 내에서 허용된 배출량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다. CBAM은 ETS와 연계해 탄소 배출량 제한 기준을 한층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수소 등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할 경우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바탕으로 관세를 징수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른바 '탄소국경세'로도 일컬어진다. 한국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CBAM 도입이 확정되면서 탄소배출권 거래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탄소배출권은 국제연합(UN) 소속 기구에 온실가스 감축 사실을 확인 받은 뒤 획득할 수 있는 권리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거래가 가능한 만큼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는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만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탄소배출권 비용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CBAM은 2023년 10월부터 운영을 시작해 2026년부터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라며 "현재 톤당 약 90유로(약 12만 2000원)인 EU의 탄소 시장 가격과 관세가 더 부과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법률 매체 렉솔로지는 21일(현지시간) "제3국의 수출입업자들은 CBAM 적용에 따른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인도와 중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수 국가가 CBAM에 대해 노골적인 자국 보호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올해부터 미국 증권 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기업 공시 기준에 ESG 전략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셈이다.
재생 에너지 활용에 대한 기준도 높아질 전망이다. 환경정보공개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오는 3월 RE100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로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기후 위기의 대응 방식이자 ESG 경영의 한 축으로 떠오르면서 SK,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LG 이노텍 등 다수 국내 기업들도 RE100에 가입했거나 가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들 약 400곳도 참여하고 있는 상태다.
RE100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CDP는 지금까지는 세계 주요 상장사 가운데 연간 100GWh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이니셔티브 참여를 독려해왔다. 다만 3월부터는 RE100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RE100 가입 여건이나 활동 범위가 더 엄격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점쳐진다. 개정안에는 △재생 에너지 요건을 정의하는 기술 요건 개정 △재생 에너지를 조달하는 전력시장 범위 △조달 가능한 재생에너지 요건 변화 가능성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