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용퇴를 선언한 지 보름 만에 차기 회장 윤곽이 드러나면서 임 전 위원장과 이 행장 간 2파전에 무게가 실린다. 그룹 사법리스크 '구원투수'로 임 후보가 뽑힐지, 무난한 '미들맨' 이 행장이 올라설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우리금융 이사회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 추천을 이틀 앞둔 1일 현재 금융권 이목은 이슈 메이커 임 전 위원장에게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 경력을 가진 그가 '관치' 논란을 무릅쓰고 회장 후보를 수락해 내·외부 출신 후보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다.
임추위가 임 후보를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에 올린 배경은 NH농협금융그룹 회장(2013~2015년) 이력보다 금융위원장(2015~2017년) 출신이라는 점이 우세하다는 평이 나온다. 손 회장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사법 리스크를 막아줄 방패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관(官) 출신 고위급 인사가 우리금융 회장에 오르면 당국과 현재진행형으로 빚는 복수의 사법적 대립각을 좁힐 수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임 후보가 숏리스트에 함께 이름을 올린 이 행장, 신현석(63) 우리 아메리카 법인장, 이동연(62) 전 우리FIS 사장 등 나머지 3명에 비해 당국 수장 타이틀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손 회장 용퇴에 결정적 요인이 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불완전 판매 책임을 놓고 우리금융은 당국발 기관 제재를 받은 상태다. 손 회장은 개인 신분으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받아 사실상 징계 수용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기관으로서 그룹이 떠안은 라임 사태 징계는 차기 회장의 과제로 남은 셈이다.
우리금융 최대 계열사인 우리은행은 작년 11월 금융위로부터 라임 사태 책임을 물어 '사모펀드 신규 판매 3개월 정지' 제재를 받았다. 더욱이 손 회장이 예상을 깨고 항소에 나선다면 차기 회장이 향후 당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 큰 과제는 작년 처음 세간에 드러난 600억여원대 우리은행 직원 횡령 건이다. 손 회장이 은행장 겸직 시절 본 사건이 불거졌으나 그가 연임을 포기한 상황에서 당국의 추가 징계가 나올 경우 주요 금융기관으로서 우리금융이 입을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횡령 이슈 역시 미흡한 내부통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관련 직원들은 제재 테이블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소방수가 절실한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당국에 반박 목소리를 높일 고위급 장(長) 출신이 필요하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임 후보는 잠정 후보군(롱리스트)에 포함될 때부터 우리금융 노조를 중심으로 제기된 관치 논란에 맞서 레이스 완주를 선언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전직 장관(금융위원장)이 민간 금융사 회장행 체급을 낮춘 데다 관치 부담에 정면 승부로 맞선 것을 놓고 용산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주요 금융그룹과 시중은행은 고위 관 출신 인사가 CEO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분위기지만 (임 후보가) 후보 수락을 한 점, 관치 논란을 일축한 점 등을 미뤄 볼 때 윗선에서 밀어주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금융사 임원 선임 절차를 개선한다는 내용에 수긍한 것 등도 이번 인선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후보는 앞서 "이전 금융위원장으로서 우리금융 회장 후보로 참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 NH농협금융 회장으로서, 평생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금융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후보가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 하마평이 나온 전례도 감안하면 현 정부로부터 합격점을 받고 있다는 해석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기획재정부 제1차관-국무총리실장-농협금융 회장-금융위원장까지 지내며 "천수를 누린다"는 평을 받는 임 후보가 우리금융 회장까지 역임한다면 금융권 통틀어 역대급 최다 민-관 기관장 기록을 세운다.
임 후보에 맞선 이 행장은 유일한 현직 은행장 프리미엄을 갖는다. 금융그룹 CEO 등극의 관례로 통하는 당사 출신 '은행장→회장' 계보를 잇는 자격을 갖춘 것이다. 손 회장과 같은 우리은행 전신 한일은행 출신의 이 행장은 우리은행 경영기획그룹 집행부행장, 그룹 전략부문 부사장, 수석부사장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일찌감치 차기 회장 물망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