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시간으로 지난 9일 0시부터 발표된 고율의 보복성 상호 관세를 12시간 만에 거둬들인 뒤 미국에 보복성 관세를 부여한 중국을 제외한 무역 상대국들에 ‘자비롭게’ 90일간의 발효 유예 기간을 부여한 뒤 “우리는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며 “누가 먼저 와서 우리와 협상 할래?”식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미국 정부가 75개국 이상으로부터 회담 요청을 받았다며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하려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먼저 하는 것이 더 나은 ‘선점 효과(first mover advantage)’가 있다고도 밝혔다.
그럼 ‘1착’으로 나선 일본이 가장 유리한 결과를 쥐게 될까? 일본이 협상 일을 제안하고 나온 뒤 미국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일본이 손에 든 숫자는 분명 ‘1번’이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미국이란 ‘프론트맨’의 손에 운명이 맡겨지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함이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일본과의 회담에 앞서 자신이 세운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자신도 이번 회담에 직접 참석할 것이라며 일본 측과의 논의 주제에 군사 지원 비용과 무역의 공정성 등이 포함될 것이라 밝혔다.
미국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국과 패전국으로 조우해 이후 수십 년간, 아니 거의 백년 가까이 군사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수천 명의 미군이 일본 영토, 그중 다수가 오키나와현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관세에 방위비 문제까지 더해 협상하는 것이 결코 편안할 입장이 아닐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이 “일본과 미국 모두에게 좋고(아주 좋고!) 유익한 무언가가 성사되길 희망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글을 보면 아드레날린이 넘쳐 흐르는 듯하다. 트럼프만의 과장된 액션과 허세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지만 그래도 백년 가까이 우방인 일본과의 회담 직전에 이 같이 '승자 같은' 흥분된 모습을 보이는 건 자신감인지 우월감인지. 협상에 임하는 일본 측으로선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먼저 할수록 메리트가 있다고 하더니 막상 가장 먼저 서둘러 1착으로 왔더니 ‘시범 사례’가 되고 있다는 기분에 입맛이 매우 떫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본심을 잘 감추는 일본인들의 특징을 발휘해 속마음 혼네(本音)를 감추고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마음 다테마에(建前)를 잘 가다듬어 미국 측의 흥분된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협상에 임하는 모습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번 회담에 앞서 “일본은 서둘러 합의를 도출하지 않을 것이며 큰 양보를 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관세에 대해 보복 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16일 오전 워싱턴 D.C.에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해 앞서 공언한 대로 관세와 군사 지원 비용, 무역 공정성 등에 대한 협상을 이끌어갔을 터이다.
일본은 대부분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군 주둔 비용과 함께 한국(25%)과 비슷한 24%의 상호 관세,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프로젝트 참여, 자동차 25% 관세 등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과 비슷한 현안을 갖고 있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어느 나라 협상 결과보다도 일본의 관세 협상 결과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약 15개국이 무역 관련 제안을 제출했으며 수십 개국이 백악관에 접촉해왔다고 밝혔다. 래빗 대변인은 “15건 이상의 협상안이 실제로 테이블 위에 올라와 검토 중”이라며 “75개국 이상이 우리 측에 접촉해 왔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못하겠다.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게임’ 2편의 ‘둥글게 둥글게’ 게임이 떠오른다. 게임 참가자들이 천천히 회전하는 거대한 원형 단상 위에 긴장한 채 서 있다가 동요 ‘둥글게 둥글게’가 멈추면 나오는 명령어 숫자에 따라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숫자에 맞게 짝을 지어 방에 들어가야 살아남는 비정한 생존 게임이다.
미국 주장대로 과연 먼저 협상하는 나라가 가장 유리할 것이가? 그 진실은 이 관세 게임에 1번으로 들어간 일본의 협상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히 알게 될 것같다.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도 미국이란 프론트맨의 명령에 순응할지, 아닐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이란 강대국 앞에서 “No”라고 튕길 수 있는 간 큰 나라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 관세 게임 참가자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미국이 관세를 무기 삼아 미국의 부흥을 이루고 중국을 길들이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게임 참가국 모두에게 닥칠 실질적 결과는 ‘탈락’일 게다. 트럼프란 배짱 두둑한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미국과의 1대1 협상에서 자국에 긍정적 결과를 더 많이 챙겨 나올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