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총수신 잔액은 2069조3048억원으로 전월(2074조4914억원) 대비 0.25%(5조1866억원) 감소했다. 예·적금 증가액(9843억원)은 1조원에 못 미쳤고, 투자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도 20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최근 은행들의 낮은 예·적금 금리와 투자 수익을 찾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은행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고금리 적금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예·적금 금리를 최대 0.3%p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동시에 최고 7~8%의 고금리 적금을 출시하며 고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고금리 적금이 고객들에게 실제로 큰 이자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일 최고 연 8% 금리의 '내리사랑적금'을 출시했지만, 실제 고객이 이 금리를 받으려면 조건이 복잡하다. 50세 이상 시니어 고객이 가입 코드를 발급받아 29세 이하 자녀나 손주에게 전달하면 가입할 수 있는 구조로, 선착순 10만 좌 한정이다. 저축 한도는 월 최대 30만원에 불과하다. 기본금리는 연 2.0%로, △우리은행 계좌에서 자동이체 △우리은행 예·적금 상품 미보유 △비대면 가입 등 세 가지 우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6.0%의 우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도 비슷하다. 지난달 출시한 '모두의 적금'은 최고 연 7% 금리를 표방하지만, 기본금리는 연 2.5%(12개월 만기)이며 월 최대 저축 한도 역시 30만원이다. 직장인·개인사업자·국민연금 수급자 등 소득 이체 고객 대상이며, 최고 금리를 받으려면 △본인 명의 신한은행 계좌로 소득 3개월 이상 입금 △신한카드 결제 실적 3개월 이상 보유 △첫 소득 조건 충족 또는 이벤트 대상에 해당해야 한다.
결국 고객들은 최고 금리를 받기 위해 은행이 제시한 각종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해도 월 30만원 한도 내에서만 적용된다. 사실상 '고금리'라는 홍보 문구에 비해 고객이 체감하는 이자 수익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금리 적금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는 은행들은 실질적으로 높은 이자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고객들은 표면적인 금리보다 우대 조건과 한도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객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A씨(34세, 직장인)는 "연 7% 적금이라고 해서 가입했는데 월 30만원 한도에 우대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결국 기본금리만 적용받고 있다"며 "과대 광고에 속은 느낌"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고금리 미끼 마케팅'에 대해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제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고금리 적금이 사실상 제한적인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고객이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명확한 조건을 강조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시중은행들의 고금리 적금 경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