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LG유플러스(대표 홍범식)가 야심 차게 선보인 인공지능(AI) 통화 비서 서비스 '익시오(ixi-O)'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노출 사고가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기업의 보안 철학과 소비자 신뢰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온디바이스 AI'를 표방하며 강력한 보안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민감한 통화 요약 정보가 서버에 장기간 보관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서비스 설계의 근본적인 모순이 지적된다.
8일 LG유플러스와 보안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지난 2일 오후 8시부터 3일 오전 10시 59분까지 약 15시간 동안 발생했다. 익시오 앱을 신규 설치하거나 재설치한 이용자 101명의 화면에 다른 고객 36명의 통화 상대방 전화번호와 통화 시각 및 AI가 요약한 통화 내용이 무작위로 노출됐다.
회사 측은 "서버 과부하를 막기 위해 도입한 캐시(임시 저장 공간) 데이터의 설정 오류"라며 "해킹이 아닌 내부 직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LG유플러스가 강조해 온 '온디바이스 AI'의 실체다. 온디바이스 AI는 데이터가 서버를 거치지 않고 단말기 자체에서 처리되는 기술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LG유플러스는 익시오 출시 당시 이러한 점을 들어 통화 녹음과 요약 기능의 안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통화 녹음 파일만 단말에 저장될 뿐 텍스트로 변환된 요약본은 서버로 전송되어 처리되고 저장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단말기의 성능 한계로 요약 기능은 서버의 고성능 AI 모델을 거쳐야 한다"며 "기기 변경 시 서비스 연속성을 제공하기 위해 6개월간 서버에 보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온디바이스 AI가 아닌 클라우드 기반의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소비자는 자신의 모든 데이터가 스마트폰 안에만 머문다고 믿었으나 실제로는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요약 정보가 기업 서버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데이터 주권 침해 논란도 거세다. 익시오 이용 약관에 따르면 이용자는 통화 요약 정보의 서버 저장에 필수적으로 동의해야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서비스 편의 제공'이라는 명목하에 이용자의 선택권을 원천 배제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기업은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수집해야 하며 선택적 정보에 대한 동의 거부를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LG유플러스 측은 논란이 커지자 "고객 선택 사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보안 거버넌스의 총체적 부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사고는 외부 해킹이 아닌 내부 시스템 최적화 작업 중 발생했다. 이는 서비스 운영 단계에서 라이브 서버를 건드리는 작업이 얼마나 안일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방증한다.
익명을 요구한 보안 전문가는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외부 침입을 막는 데 주력하지만 실제 대형 보안 사고의 상당수는 내부자의 실수나 권한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다"며 "모든 앱에 AI가 탑재되는 환경에서 개발 편의성이 보안 원칙을 압도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업계 전문가는 "이번 사태는 기술적 버그가 아닌 프로세스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비스 기획과 설계 단계부터 보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시큐리티 바이 디자인(Security by Design)'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개발 부서가 보안팀의 검수를 거추장스러운 절차로 여기는 조직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LG유플러스는 피해 고객 36명에게 개별 통지하고 사과했으며 추가 피해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미 뚫려버린 보안 시스템과 '무늬만 온디바이스'였다는 소비자들의 배신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번 유출 사고의 경위와 LG유플러스의 개인정보 보호 조치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 '편의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보안 불감증
LG유플러스 익시오 사태는 '온디바이스 AI'라는 용어가 마케팅 수단으로 오남용될 때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소비자가 온디바이스 AI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 민감한 정보가 통신사 서버나 클라우드로 전송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통화 녹음 파일은 단말에 두되 요약본은 서버로 가져가는 방식을 택하면서도 이를 뭉뚱그려 온디바이스 AI라고 포장했다.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면 이를 투명하게 고지하고 소비자가 서버 저장 여부를 선택하게 했어야 한다. "서비스 연속성을 위해 6개월간 보관했다"는 해명은 공급자 중심의 오만한 발상이다.
또한 '내부 직원의 실수'라는 해명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통신 서비스의 서버 설정이 직원 한 명의 실수로 꼬이고 타인의 통화 기록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시스템이라면 그 자체로 심각한 결함이다. 이는 해커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내부 통제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데이터 신뢰에서 나온다. LG유플러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안'을 비용이나 규제가 아닌 서비스의 본질로 인식하는 거버넌스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어설픈 기술 과시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사생활을 철통같이 지키겠다는 기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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