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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로비를 금지한 나라, 왜 로비는 더 불투명해졌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한석진 기자
2025-12-12 09:27:27
대한민국 국회 전경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국회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대한민국에서 ‘로비’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어에 가깝다.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았고 제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는 것은 ‘청탁’, ‘알선’, ‘부정한 영향력 행사’라는 형사적 개념들이다. 로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어에서만 지워졌다.
 

그러나 현실에서 로비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정책 결정과 행정 판단의 과정에는 언제나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문제는 그 과정이 제도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유료 로비 활동이 사실상 불법으로 취급된다. 변호사만이 직업적으로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를 갖고 있다. 변호사법 때문이다. 변호사가 아닌 제3자가 대가를 받고 정책이나 행정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 하면 곧바로 불법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 결과는 의도와 다르다. 로비를 차단하겠다는 목적과 달리 로비 기능은 로펌과 변호사에게 집중됐다. 제도 부재가 낳은 구조적 귀결이다. 로비를 제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패만을 경계하다 보니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지나치게 좁아졌고 그 틈을 통과할 수 있는 직역만 남았다. 정책 소통과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영역은 투명한 제도 대신 ‘법률 자문’이라는 외피 속으로 흡수됐다.
 

이러한 현실이 낳는 문제는 단순한 직역 편중에 그치지 않는다. 정책 접근권이 자본력과 법률 네트워크에 종속된다. 대기업과 대형 로펌 전관 네트워크는 접근 통로를 갖지만 중소기업과 시민단체 전문가는 공식적인 경로를 찾기 어렵다. 로비를 금지한 제도가 오히려 정책 접근의 불균형을 키운 셈이다.
 

국제 기준에서 보면 한국의 현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OECD 국가 가운데 로비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등록 제도와 공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 내역 공개를 법으로 규정한다. 누가 누구를 만나 어떤 사안을 논의했고 얼마를 썼는지가 공개된다. 유럽 주요국 역시 로비스트 등록부와 윤리 규범을 운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태도다. 이들 국가는 로비를 없애겠다는 발상 대신 로비를 드러내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로비를 합법화한 나라일수록 로비는 투명하다. 반대로 로비를 금기시한 한국에서는 로비가 음성화됐다. 기록도 남지 않고 설명 책임도 흐릿해졌다. 언론과 시민이 감시할 수 있는 통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로비를 금지한 목적은 부패 방지였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제도적 선택이 과연 부패를 줄였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제도 밖에서 움직이는 영향력은 통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이해를 대변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투명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추측과 불신만 남는다.
 

로비는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다. 통제되지 않은 로비가 문제일 뿐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정책 과정에 전달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제도화하지 않은 채 금기어로만 다루는 태도는 권력을 은폐된 방식으로 집중시킨다. 지금의 변호사 중심 구조가 그 증거다.
 

사서삼경 『서경(書經)』에는 이런 취지의 말이 전해진다. "정치는 드러나야 바르고 숨기면 어그러진다(政在明 不在隱)". 통치의 핵심은 배제가 아니라 공개라는 뜻이다. 성경 역시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다. "빛 가운데서 행하라 그러면 드러날 것이 두렵지 않다(요한복음 3장 21절)".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로비를 더 강하게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로비를 기록하고 공개하는 제도다. 누가 누구를 대신해 어떤 사안을 논의했는지 드러내는 장치다. 그래야만 로펌 독점 구조도 완화되고 기업과 시민사회 전문가가 보다 공정하게 정책 과정에 접근할 수 있다.
 

로비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 로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장 불투명한 형태로 남는다. 이 상식을 외면한 채 투명성을 말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이 아니라 설명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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