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74개 핵심 기술 가운데 66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분석이다. 21세기 초만 해도 미국이 평가 대상 기술의 90% 이상을 선도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물론 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논문 인용도를 중심으로 한 분석은 연구 활동의 양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데 유용하지만 곧바로 상업적 성공이나 완성도 높은 제조 기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항공기 엔진 등 일부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은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다고 이 보고서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다.
과학기술 패권의 본질은 단일 제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장기적 축적과 생태계의 방향성에 있다. 미국이 20세기 초 영국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독일이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이제 추격자의 전략을 벗어나 인공지능, 양자기술, 합성 생물학, 소형 위성, 클라우드·엣지 컴퓨팅 같은 미래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선점하려 하고 있다. 연구실의 논문이 산업과 시장으로 빠르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중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현실은 불편하다. 그동안 필자는 여러 차례 중국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안이한 낙관과 이념적 거부감이었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 “원천기술은 결국 미국”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이 중국은 인력·자본·제도를 동원해 기술 축적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이제 수치로 결과가 드러났는데도 우리 관료와 과학기술계가 이를 여전히 가볍게 넘기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한국의 문제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연구 평가, 정권 주기에 따라 흔들리는 과학기술 전략,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연구 문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중국은 “10년 뒤 무엇을 장악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목표에 맞춰 사람과 자원을 움직인다.
순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사람에 있다”고 했다. 기술도 결국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다. 한국이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미·중 사이에서 기술을 선택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학습과 축적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중국의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분석하며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은 실용적으로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장기·고위험 연구가 가능한 제도적 토대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중국이 이미 과학기술 강대국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아직 모든 분야에서 완성형은 아니지만 방향과 속도에서는 이미 강대국이다. 그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한국은 경쟁에서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판 자체에서 배제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심이 아니라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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