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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코노믹데일리] 중동이 다시 불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 전역에서 확산된 대규모 항의 시위와 이에 대한 강경 진압은 단순한 내정 문제가 아니다. 국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어디까지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자 중동 질서 전반의 불안정을 자극하는 위험 신호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성직자 통치’라는 체제 아래 국가 운영의 핵심을 신정 권력에 고정해 왔다. 통치 이념이 신앙의 절대성을 앞세우는 순간, 정치는 타협을 잃고 제도는 책임을 잃는다. 그 결과는 언제나 시민의 삶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최근 이란에서 시작된 시위가 물가 급등과 생활고에서 출발해 정권 전반에 대한 분노로 확산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생은 정치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빵값과 연료비, 생필품 가격이 오를 때 체제에 대한 불만은 추상적 비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전환된다. 오늘의 이란은 경제적 고통이 어떻게 정치적 저항으로 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사회가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첫째, 국가 폭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기반 인권단체(IHR) 등 국제 인권기구들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추정치를 내놓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떠나, 국가가 시민을 향해 조직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 정당성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다. 둘째, 이 위기가 중동 전체의 지정학적 긴장을 증폭시킬 가능성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살해가 중단됐다고 들었다”, “처형 계획은 없다”는 식의 완화된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동시에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군사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인권 침해가 외부 개입의 명분으로 전환되는 순간, 중동은 다시 힘의 계산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결코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체제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이란 정치 체제의 핵심으로 알려진 ‘성직자 통치(벨라야트-에 파키흐)’는 성직자가 국가를 지도할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이 논리가 절대화될 경우 시민의 권리는 권력에 의해 허용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법치는 정치 권력의 하위로 밀려난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신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신앙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는 통치 구조다. 신앙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지만, 국가 권력이 이를 독점하는 순간 정치적 다양성은 배제되고 반대 의견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생명과 자유, 적법절차를 훼손하는 폭력은 어떤 이념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사태를 둘러싼 국제 역학 또한 냉정하다. 중동은 오랜 기간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종파 구도가 정치·안보 동맹과 결합해 굳어져 왔다. 이란의 영향력 약화를 반기는 세력이 있는 한편, 체제 붕괴가 내전과 난민, 국경 불안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란이 심각한 혼란이나 내전으로 치달을 경우 난민 증가와 국경지대 불안, 역내 세력 균형의 붕괴는 피하기 어렵다. 이 틈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박이 군사 충돌로 비화한다면 그 피해는 다시 시민의 몫이 된다. 정권의 생존 논리와 외부의 군사적 계산이 맞물릴수록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서민의 일상이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시민의 생명을 즉각 보호해야 한다. 진압 중단과 구금자·수감자의 적법절차 보장, 표현과 집회의 자유 회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둘째, 통치의 정당성을 신정의 절대성에서 책임 정치와 권력 분립, 법치로 옮겨야 한다. 셋째, 경제를 민생의 언어로 재건해야 한다. 외부 제재를 탓하기에 앞서 부패와 특권, 폐쇄적 구조를 끊고 통화·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생필품 공급망 복원에 나서야 한다. 넷째,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전쟁의 경계가 아니라 신뢰의 경로로 전환해야 한다. 긴장을 낮추는 투명성과 안전장치 없이는 제재 완화와 투자, 교역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 역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민 보호라는 명분이 군사 개입의 자동 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 충돌은 단기적 정권 타격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 사회 재건과 평화에는 더 큰 비용을 남겨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실의 검증, 인권 보호, 외교의 공간, 그리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국제적 협력이다. 이란은 우리에게 거울이다. 이념이 제도를 압도하고, 권력이 책임을 거부하며, 폭력이 일상을 잠식하는 순간 국가의 미래는 급속히 소진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어느 문명권에서도 타협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정치는 총과 교수대가 아니라 밥과 일자리, 교육과 법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란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체제의 승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길이야말로 중동의 평화를 향한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2026-01-15 10: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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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형 구형
[이코노믹데일리]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 혐의로 사형이 구형된 것은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은 헌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한 내란의 우두머리”라며 사형 선고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오는 2월 19일 오후 3시에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인사들에 대해서도 중형을 구형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무기징역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는 징역 30년을 각각 구형했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는 징역 20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는 징역 15년이 구형됐다. 박억수 특검보는 최종 변론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반국가세력에 의한 중대한 헌법 질서 파괴 사건”으로 규정하며 “윤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장기적으로 독점하기 위해 입법권과 사법권을 찬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행위는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반국가 활동”이라며 “사형 구형은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특검은 계엄 선포 과정에서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고,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혼란이 초래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검은 또 윤 전 대통령이 사건 이후 진지한 성찰이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다수의 국민이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도 양형 사유로 제시했다.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을 모의하고 주도한 우두머리로, 사형이나 무기징역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며 “사형은 형사사법이 범죄에 대해 사회적 의지를 표현하는 절차적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용군 전 제3야전군 헌병대장(대령)에게는 징역 15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에게는 징역 12년,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에게는 징역 10년이 각각 구형됐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인 김홍일 전 검사장은 “계엄 선포 외에 위헌·위법 행위는 실행은 물론 시도조차 없었다”며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건을 재판으로 끌고 왔다”고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도 약 90분간의 최후 진술에서 “국가 비상사태를 알리고 극복을 호소한 헌법상 긴급권 행사를 내란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며 “자유와 주권, 헌정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와 기소 과정을 “광란의 칼춤”에 비유하며 “이처럼 통제 없이 수사가 진행된 사례는 없었다”고 반발했다.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 역시 내란 혐의를 부인하며 적극적인 가담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은 오전 9시 30분에 시작돼 이튿날 오전 2시 25분까지 약 17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오후 8시 41분까지 윤 전 대통령 측의 서류 증거 조사가 진행됐고, 이후 특검 측 최종 변론과 구형, 피고인 측 최종 변론과 최후 진술이 차례로 이어졌다.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특검의 사형 구형이 언급되자 욕설과 폭소가 터져 나왔고, 윤 전 대통령의 최후 진술이 끝난 뒤에는 박수가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전시나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 상황에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봉쇄해 계엄 해제를 막으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주요 정치 인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체포·구금하려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번 재판이 열린 417호 법정은 30년 전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내란 수괴 혐의로 사형을 구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두 차례의 내란 재판이 같은 법정에서 열리면서, 헌정 질서와 권력의 책임을 둘러싼 역사적 장면이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됐다.
2026-01-14 07: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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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체포, '내란 선전·선동' 정면 수사로 번졌다
[이코노믹데일리] 12·3 비상계엄 사태의 내막을 밝히기 위한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내란 선전·선동 혐의의 중심에 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끝내 체포되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내란 선전의 법적 한계’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이날 오전 황 전 총리의 서울 자택에 진입해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혐의는 내란 선전·선동. 황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그는 해당 글에서 “나라를 망가뜨린 종북주사파 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며 “모든 비상조치를 취하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고 적었다. 특검은 이 게시물이 단순한 정치적 의견 표명을 넘어, 사실상 내란을 선전하거나 내란 목적 행위를 선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조직적 선동이 내란 목적의 여론 형성으로 이어졌는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황 전 총리는 세 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이에 특검은 형사소송법 제200조에 따라 ‘출석 거부 및 불응 우려’를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체포영장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요구에 불응한 경우’에 한해 발부된다. 이번 체포는 단순한 절차적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달 27일과 31일 두 차례 자택 압수수색이 황 전 총리의 거부로 불발된 뒤, 세 번째 시도에서야 영장이 집행됐다. 특검팀은 압수수색과 체포를 동시에 진행하며 관련 전자기기와 문건 확보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체포된 황 전 총리를 상대로 게시물 작성 경위, 계엄 선포 당시 주변 인물과의 연락, 정치적 의도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수사팀은 황 전 총리의 진술을 토대로 내란 선전·선동 혐의의 법적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검토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내란 특검법에 따르면, 특검은 비상계엄 선포 건의 및 구금시설 마련, 내란 목적의 살인·음모·선동 등 계엄 관련 범죄를 전담해 수사한다. 이번 수사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최고위급 정치인의 공개적 ‘지지 발언’이 내란 선전으로 처벌 가능한지 여부를 가르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국가 안보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단순한 정치적 발언이라면 처벌이 어렵지만, 국민에게 폭력적 저항이나 불복종을 유도했다면 내란 선전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특검의 체포 시한은 48시간이다. 조은석 특검팀은 황 전 총리의 진술과 압수물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수사를 두고 “비상계엄의 정당성 논란이 이제 사법적 판단 단계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전직 총리의 체포를 넘어, ‘비상 상황에서의 언론·표현 자유’와 ‘국가 보위의 경계선’을 다시 묻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5-11-12 09: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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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원로 조갑제 선생 "진영 논리 넘어 法과 事實이 유일한 기준 돼야"
[이코노믹데일리] 오후 5시 무렵, 서울 종로구 세안문로 남서쪽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오피스텔 고층 사무실 안은 일반 가정의 거실처럼 고즈넉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전기와 국내 정치·국제 정세를 다룬 서적들이 빽빽히 꽂혀 있었다. 일부는 바닥과 책상 위에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조갑제닷컴과 조갑제TV를 운영하는 조갑제 선생의 공간이다. 1945년생, 기자 생활 55년. 이제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그는 “내 글방이 곧 내 전선”이라며 “책은 역사의 흔적, 기자는 그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하는 그의 면면이 한번에 느껴진다. 보수와 진보 구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조갑제 선생은 오랫동안 보수의 핵심에 있어온, 보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달 발간된 저서 ‘윤석열 몰락의 기록―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에서 전임 대통령의 재임 중 벌인 군사 쿠데타에 대해 “국가 파괴 행위”라 규정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보수 출신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냉철하게 비판했고 단호하게 쿠데타 세력과도, 부정선거와 같은 음모론과도 칼같이 거리를 뒀다. 어줍잖은 인물이 이미 실권 잃은 전직 대통령 한번 더 패대기치기하는 정도였다면 그리 관심 갖진 않을 게다. 그간 보수의 기치를 지켜온 그였기에 그가 버린 것, 그가 취한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보수·진보를 지나 극우·극좌가 난무하며 종교인지 정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이념 과잉이 광신처럼 뒤범벅이 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낸 채 공개적으로 뭔가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가. 이념의 미친 굿판 같은 이 사회를 향해 조갑제는 이제 보수·진보란 용어에서 탈피해 사실과 법치를 우선시할 것을 제안하며 음모론과 극단주의에 선을 그었다. “지금 (글로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극단화돼 있다. 둘러보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여러 나라에서 이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갑제 선생은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미국 이민당국이 한국인 300여명을 일주일간 구금한 사건을 예를 들었다. “우리 근로자들이 그 피해자가 돼 비루한 구금시설 시설에서 일부는 쇠사슬까지 찼고, 임산부도 구금되는 그런 막무가내 상황이었다. 일부 업무용 비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다 구금시설에 집어 넣어버렸다.” 그는 “이 사건은 일종의 ‘본보기’였다”며 “세계 곳곳이 이 같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이 같은 경향들이 나타난다고 보는가. “지금 세계 전체가 극단화돼 있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브라질,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갇히고, 언론은 자극적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회 전체가 불신과 분노에 휩싸였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조금만 자극을 줘도 터질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다.” -특히 우파의 극단화 원인은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 “부정선거 음모론에 그 뿌리가 있다. 한국의 2020년 4월 총선 부정선거론자들과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연계된 일종의 부정 선거 삼각 동맹이 형성됐다. 근거 없는 주장인데도 한국의 보수 내부를 깊이 분열시켰다. 음모론은 한 번 뿌리 내리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과 유튜브, 일부 교회가 이를 증폭시키며 사실처럼 퍼뜨려 극우화가 심화됐다.” -왜 유독 한국 보수가 큰 타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됐나. “지금도 우리 사회에 보수층으로 불릴 수 있는 국민은 약 45% 수준으로 건재하다. 하지만 이를 대표하던 보수 세력은 거의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국민의힘은 이미 극우화했고, ‘보수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사라졌다. 그 시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됐다. 탄핵까지 안 갔을 수도 있는 일을 비박 세력과 민주당 세력이 손을 잡고 선동적인 가짜 뉴스에 기초해 탄핵을 시킨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보수는 윤석열이란 검찰총장을 영웅화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그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했다. 지금 보수 세력의 괴멸은 윤석열의 폭주를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진영 논리에 빠져 박수부대가 되고 팬클럽이 된 대가다. 윤석열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걸 봤을 때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다. 탄핵 이후에는 이념보다 감정이 앞섰고, 결국 합리적 토론의 장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라 보는지.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결정부터가 법과 경호 상식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때부터 불안했다. 한국 현대사를 부정을 하고 어떻게 청와대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모독이다. 그 말을 했다는 것은 윤석열의 머릿속에는 보수적 역사관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치사한 방식으로 몰아내며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의료정원 확대와 의사 집단 적대화, 지난해 12·3 계엄령 선포까지 모두 내부를 향한 공격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좌파와 싸운 적이 없다. 항상 자기편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런 행보가 보수 세력의 붕괴를 재촉했다.” -지난해 12·3 계엄령의 배경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윤 전 대통령의 음주 문제, 부인과의 비정상적 관계, 주술적 영향, 그리고 부정선거 음모론이 뒤엉킨 결과였다. 저는 이를 ‘망상적·발작적 결정’이라 표현한다. 한 국가의 수장이 개인적 불안과 가족 문제를 국가 운영에 투영한 전례 없는 사례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해악을 거듭 강조하셨는데. “대통령이 직접 부정선거를 언급하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악령’과 같다. 한국 개신교 일각이 이를 퍼뜨리며 교인들을 현혹했는데 이는 종교를 빌미로 삼은 범죄다. 전 국민의 30%, 국민의힘 지지층의 60%가 한때 이 음모론을 믿었다. 공산주의가 한반도를 분단시킨 것만큼이나 오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음모론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철저한 수사와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검이 외관죄를 수사할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 음모론의 발원과 유포 경로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보수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흔들린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수년간 법적 절차가 이어졌듯이, 한국도 단호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 재건 가능성은. “보수는 지난 80년간 우리나라 산업화와 문명 건설의 주인공이었다. 군, 기업, 의료보험, 중화학 공업, 사회 인프라 모두 보수가 만든 업적들이다. 그러나 박근혜·윤석열 사태를 거치며 보수 세력의 절반은 좀비화·컬트화됐다. 이제는 법치와 사실을 기준으로 ‘국가 중심 세력’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민의힘 해체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준석·한동훈 세력 등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보수의 이름을 되찾으려면 ‘보수’라는 말 자체보다 실질적 가치와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그간 사회 전반의 지적(知的) 기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해왔는데. “한국어의 70%는 한자어다. 이를 몰라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휘력·판단력이 떨어지고, 고급 학문도 어려워진다. 저는 이를 ‘국가적 치매화’라고 부른다. 국민의 분별력이 약해지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먹히는 것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민적 사고력이 점차 퇴화해 민주주의 운영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젊은 세대가 통일 필요성에 회의적이란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갖고 계신 걸로 안다. “그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우리 한민족은 ‘일민족 일국가(一民族 一國家)’의 전통을 갖고 있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령하고 있다. 평화 공존은 임시일뿐, 통일을 포기하면 한국은 역사적 정통성을 잃고 결국 식민지화될 수 있다. 과거 서독처럼 실력을 기르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조갑제 선생은 “보수와 진보, 진영 논리를 넘어 법과 사실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극단화와 보수 진영의 몰락을 “분별력의 붕괴”로 진단했다. 이어 그는 우리 국민이 사고력을 높이고 분별력을 찾고 역사의 향방을 찾아내는 방안의 하나로 ‘회고록 쓰기’를 권장했다. “개개인의 회고록들이 모여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회고록 쓰기를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의 말 속에는 55년 기자 생활이 남긴 집요한 현실 감각과, 국가를 향한 냉철한 애정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2025-09-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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