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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②】 중국은 '국가'가 아니라 '문명'
[이코노믹데일리]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중국을 서구식 ‘국가’의 틀로만 바라본다. 영토가 있고, 국민이 있고, 정부가 있는 보통의 근대 국민국가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 중국을 분석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해석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중국은 한국이나 서구 국가들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스스로를 하나의 국가 이전에 ‘문명’으로 인식해 온 집합체다.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화문명(中华文明)’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역사 용어가 아니다. 이는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국가 운영 철학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중국은 자신들을 특정 시점에 탄생한 근대 국가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문명의 연속선 위에 놓인 존재로 인식한다. 이 문명 인식이 중국의 정치, 외교, 영토, 역사 정책 전반을 규정한다. 한국은 비교적 명확한 국가 형성 과정을 거쳤다. 민족과 언어, 영토가 비교적 일치하며 근대 국가의 틀 속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반면 중국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중국은 다민족, 다언어, 다지역 사회다. 현재 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민족만 56개에 이르며 생활 방식과 문화, 사고방식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이질적인 집단이 하나의 정치 체계로 유지되는 이유는 ‘중국 문명’이라는 상위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국경은 단순한 법적 선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공간, 문화적으로 연결됐다고 믿는 지역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중국이 영토 문제에서 국제법보다 역사 서사를 앞세우는 이유다. 대만, 티베트, 신장, 홍콩 문제를 중국이 일관되게 ‘내정 문제’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이 지역들은 독립된 정치 단위가 아니라 문명 질서의 일부다. 이런 문명 인식은 중국의 집착과 강경함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중국은 사소한 문제에도 과잉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내부 논리에서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문명의 연속성과 통합이 위협받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적 손해나 국제적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이 원칙에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문명국가로서의 중국은 시간 개념에서도 다르다. 서구 국가들이 단기 성과와 선거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면 중국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단위의 시간을 전제로 정책을 설계한다.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통합과 안정을 보장한다면 감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정책은 느려 보이지만 방향성은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 감정’을 중국에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가에 대한 감정과 정부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분리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국가, 문명, 정권이 강하게 결합돼 있다. 중국인 다수에게 중국 공산당은 단순한 정치 조직이 아니라 문명을 관리하는 주체로 인식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내부 여론을 오독하게 된다. 중국의 역사 인식 역시 문명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게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다. 과거에 속했던 지역과 민족을 현재의 중국 문명 안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은 단순한 역사 해석이 아니라 정치 행위다.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논쟁이 학술을 넘어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종종 역사 왜곡이나 제국주의적 발상으로만 규정한다. 물론 비판할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비판과 이해는 구분돼야 한다. 중국이 왜 그토록 역사와 영토 문제에 집착하는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응은 감정적 반발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감정적 대응은 중국의 문명 논리를 흔들지 못한다. 문명국가로서의 중국은 대외 관계에서도 독특한 태도를 보인다. 중국은 주변 국가를 대등한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질서 속에서 위치를 설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현대 국제 질서와 충돌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중국은 평등한 국가 간 관계보다는 위계적 질서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인식은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한국을 감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보다 전략적 가치와 문명 질서 속 위치로 판단한다.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을 때는 우호적이지만 문명 통합이나 체제 안정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면 단호해진다. 한국이 느끼는 ‘온도 차’는 여기서 비롯된다. 중국을 문명국가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한 이해는 현실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중국이 어떤 선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지 어떤 영역에서는 타협이 가능한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외교와 경제, 안보 전략 수립에 필수적인 전제다. 중국을 서구식 국가로만 바라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놀라고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을 문명국가로 이해하면 놀라움은 줄어들고 예측 가능성은 높아진다. 예측 가능성은 전략의 출발점이다. 중국을 아는 것이 곧 중국에 끌려다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아는 것이야말로 중국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자신을 문명으로 규정하며 움직일 것이다. 이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감정과 이념을 앞세워 중국을 단순화할 것인가 아니면 구조와 논리로 중국을 이해할 것인가. 중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중국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판단력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중국은 국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문명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의 대상도 무시해도 되는 이웃도 아니다. 분석 가능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분석 가능한 대상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2026-01-02 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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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그래도 건재할까
[이코노믹데일리]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몇 주 전만 해도 쿠팡의 캐치프레이즈는 꽤 납득이 갔지만 요즘엔 이 말이 반어법처럼 들린다. 연말을 앞두고 터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그 계기다. 지난 11월 쿠팡에서 3340만 개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 개인정보 유출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통신사, 카드사, 게임 개발사에서도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다. 다만 이번 유출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주소, 구매 내역 같은 민감 정보가 포함됐고 일부는 쿠팡이 아닌 제 3자에 의해 유출 사실을 인지한 뒤에야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이렇다 할 사과도, 보상안도 발표하지 않았다. 박대준 전 쿠팡 대표만이 책임을 진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의장은 국회 청문회에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170개국에 걸친 글로벌 사업을 영위하는 CEO이기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김 의장을 대신해 자리를 채운 건 해럴드 로저스 쿠팡 신임 대표다. 미국 본사에서 CAO를 하던 파란 눈의 대표는 청문회 내내 "모든 질문에 최선을 다 해 답하겠다"거나 "통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말을 번복했다. 브랜드 신뢰가 사라지는 건 한 순간이다. 앞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었던 곳은 모두 고객에게 사과를 전했다. 일부 기업은 보상안도 함께 제시했다. 물론 사과만으로 다 해결되진 않는다. 보상안도 성에 차지 않다는 여론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최소한의 태도가 있고 기업은 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브랜드의 신뢰를 유지하게 했다. 쿠팡은 그 최소한이 없었다. 시장 상황이 빠르게 달라졌다. 쿠팡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며 '탈팡'을 선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대체재는 널렸다. 새벽배송은 마켓컬리도, 오아시스도, SSG닷컴도 한다. 온누리상품권 할인 덕에 동네 시장은 오히려 온라인보다 싸다. 물류 현장의 체감 기류도 예전과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SNS에서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는데 출고 트럭에 빈 공간이 많다", "물량이 줄어서 중간에 쉴 수 있었다"는 글이 올라온다. 단편적인 증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대체로 통계보다 빨리 시장 분위기를 말해준다. 쿠팡이 자랑하던 '압도적 물동량'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유통·생활경제로 출입처가 바뀌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꼭 나오는 말이 있었다. "쿠팡 빼고 다 힘들다"는 말이다.이 말은 현실 진단이자 경계였다. 하지만 요즘은 이 말이 슬며시 바뀌고 있다. 모두가 바쁜 시대, 쿠팡의 로켓배송은 여전히 빠르고 편리하다. 하지만 쿠팡은 아직도, 앞으로도 건재할까? 이제 소비자가 쿠팡 없이도 어떻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차례다.
2025-12-24 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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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 의장은 자본이 보내는 신호를 심각하게 생각하라
김범석 쿠팡 의장은 국회의 경고 앞에서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여야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라도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제도적 제재 방안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데도 그의 태도는 무심하다. 침묵은 전략일 수 있으나 반복될수록 오만으로 읽힌다. 민주 사회에서 국회는 협상의 상대가 아니라 국민을 대신한 질문자다. 그 질문을 무시하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를 법과 상식 위에 놓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한국 사회의 소비자와 노동, 공공 인프라 위에서 성장한 기업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가 민주적 통제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의장은 ‘글로벌 기업가’라는 말로 국회 출석 요구를 비켜가고, 외국인 대표를 전면에 세웠다. 형식적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형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책임의 얼굴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적 상식이다. 고전은 이 문제를 이미 꿰뚫고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명(正名)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어그러지고 말이 어그러지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의 이름을 피하는 사회에서 공정한 질서가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김 의장의 태도는 바로 이 정명을 무너뜨리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 압박은 김 의장에게 크게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법과 제도는 시간이 걸리고 여론의 파고는 기업이 관리 가능한 변수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본의 신뢰다. 시장은 정치적 발언보다 자금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다. 특히 국민연금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공적 기금이자, 시장에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상징적 투자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은 단지 수익성만이 아니라 지배구조, 책임성, 사회적 신뢰를 함께 평가받는다. 이는 압박이 아니라 원칙이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인권 침해, 환경 파괴, 지배구조 문제를 이유로 글로벌 대기업들의 투자 비중을 축소하거나 철회해 왔다. 그 결정은 정치적 제재가 아니라 장기 리스크 관리라는 명분 아래 이뤄졌다. 그 결과 해당 기업들은 이미지 타격을 넘어 다른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도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됐다. “이 기업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연기금과 공적 펀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고경영진의 책임 회피, 의회 불응,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장기 투자 관점에서 ‘위험 요인’으로 분류된다. 글로벌 자본은 도덕을 말하지 않지만 신뢰를 가격에 반영한다. 김 의장이 가장 두려워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국민연금이 공개적으로 투자 지속 여부를 재검토하는 국면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이는 단일 기관의 판단을 넘어선 신호가 된다. “이 기업의 리스크는 관리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자본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불안은 전염된다. 맹자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고 했다. 공정한 규칙과 신뢰라는 ‘항산’이 무너지면 시장의 안정적 판단이라는 ‘항심’도 사라진다. 국민연금의 투자 회수 가능성은 처벌이 아니라 경고다. 신뢰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특정 기업을 겨냥한 보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다. 공적 자금은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에 대해 질문할 의무가 있다. 투자 철회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그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직무 유기다. 이제 선택은 김범석 의장에게 있다.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국회와 사회를 관리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공개된 자리에서 책임 있는 설명으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전자는 단기적으로는 편할 수 있으나 자본의 기억은 길다. 후자는 불편하지만 지속 가능한 길이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큰 장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성장을 이룬 기업의 수장이 그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 성장은 언젠가 비용으로 돌아온다. 국민연금의 선택은 그 비용을 미리 경고하는 장치일 뿐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신뢰를 잃은 기업에는 침묵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답한다. 김범석 의장이 지금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국회의 법안 문구가 아니라 자본이 보내는 이 조용한 신호다.
2025-12-2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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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 투명성과 정치의 경계
[이코노믹데일리] 대통령에게 이뤄지는 각 부처의 업무보고는 국정 운영의 출발점이자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절차다. 최근 이 과정의 생중계가 이뤄지면서 이를 둘러싼 평가 역시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 투명성을 높인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행정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업무보고 생중계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투명성이다. 과거 업무보고는 제한된 공간에서 요약본이나 발언 일부만 전달되곤 했다. 생중계를 통해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 장관과 공직자의 준비 수준, 부처 간 인식 차이를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행정부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형식적인 보고나 책임 회피성 발언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정 운영이 ‘보여지는 권력’이 될 때, 국민 신뢰는 그만큼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다. 국민은 단순한 결과 보고가 아니라 정책 형성의 초기 단계부터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는 데에도 보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정치가 폐쇄적이라는 인식을 완화하는 데도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생중계가 만능은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업무보고가 ‘행정의 장’이 아닌 ‘정치의 무대’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보고자는 국민이 아닌 여론을 의식하게 된다. 정책의 세밀한 문제점이나 미완의 대안은 숨기고, 듣기 좋은 말만 나열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대통령 역시 즉흥적 질책이나 과도한 메시지를 던질 경우, 국정 운영보다 정치적 효과가 앞선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즉흥적인 질책이나 강한 표현은 국민에게는 통쾌함을 줄 수 있지만, 행정 시스템 전체에는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공무원들이 ‘틀리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신 행정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국정 운영은 속도와 결단 만큼이나 숙의와 조율이 필요한 영역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민감한 정보의 공개 여부다. 외교, 안보, 산업 전략과 같은 사안은 공개 자체가 국익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공개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국가 경쟁력이나 협상 전략이 노출될 수 있고, 공무원들이 솔직한 토론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도 생긴다. 공개 회의와 비공개 회의의 적절한 구분은 행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모든 회의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민주주의의 진전은 아니다. 공개와 비공개를 적절히 구분하는 것 역시 성숙한 행정의 조건이다. 업무보고 생중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무엇을 공개하고, 무엇을 비공개로 둘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생중계가 국정의 ‘쇼윈도’가 아니라 책임 행정의 도구로 기능하려면, 보여주기식 연출을 경계하고 제도의 취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투명성과 효율성, 두 가치의 균형이야말로 생중계 업무보고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다.
2025-12-19 08: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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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업 로비 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
[이코노믹데일리]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더 이상 한 기업의 실수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무단 결제가 이어지고, 국민의 민감 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이번 사태는 한국 디지털 산업 전반이 어디에서 잘못되고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고 이후의 행태다. 기업 내부의 책임 체계를 점검하기보다, 여론 진화와 규제 대응을 위한 로비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카오의 전국적 먹통 사태, 네이버의 잦은 보안 위협, 신생 플랫폼들의 잇따른 정보 유출은 이미 예견된 징후였다. 이들 기업은 민간 서비스이지만, 이용자 일상은 사실상 이들에게 의존한다. 결제, 메시지, 인증, 이동 서비스까지 두세 기업이 좌우하는 시대에, 사고가 날 때마다 형식적 사과와 사업 홍보만 내놓는 태도는 더는 용납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선택하는 ‘대응의 방향’이다. 보안을 챙길 인력보다, 정책과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를 대거 영입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전·현직 국회의원, 관료, 판·검사, 언론 출신이 ‘고문’이나 ‘자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이들은 기술과 거리가 있음에도 요직에 앉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보다 문제를 막아줄 인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현실에서 보안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자산임과 동시에 국민의 권리다. 개인정보 유출은 즉각 데이터 오염으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사기·알고리즘 왜곡·표적 공격 등 국가적 위험으로 확대된다. 세계 주요 기업들이 AI 보안, 데이터 관리 체계, 클라우드 안전성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이를 비용으로만 여기고, 사고 이후 로비에 힘을 싣는다면 경쟁력은 더 빠르게 약화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로비 라인 강화’가 아니다. 강력한 책임 체계 확립이다. 첫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사고를 내고도 부담 없이 넘길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은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중대한 보안 실패에 대해서는 최고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실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 계속되는 한, 보안은 기업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셋째, 일정 기간 내 반복 유출이 발생한 기업에는 서비스 제한이나 영업정지 같은 실효적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의 데이터를 필수 자산으로 사용하는 기업이라면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넷째, 기업이 영입한 전직 권력자·외부 인사의 명단과 보수, 역할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기술 관련 조직이 공개되는 만큼,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높은 인력도 공개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데이터로 성장한 기업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순간, 그 기업은 더 이상 기술 기업이라 부르기 어렵다. 국민의 삶 한복판을 장악한 플랫폼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고 로비에 기대는 방식을 계속한다면, 산업 전체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쿠팡 사태는 한국 디지털 산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위기를 기술로 해결할 것인지, 로비로 넘길 것인지. 선택의 책임은 기업에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2025-12-0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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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의 병목은 '신뢰와 인식'"…양국 전문가 한 목소리
[이코노믹데일리] 한·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의 방향성과 핵심 과제를 진단하는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신뢰와 인식’이 현재 한·중 관계의 가장 큰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경쟁 심화로 외교·안보·기술·공급망 전 분야에서 압력이 커진 가운데 협력이 가능한 영역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온라인 여론 변동성과 오해 확산을 어떻게 제어할지가 양국 관계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5일 서울 중구 중국건설은행 서울본점에서 아주일보와 주한대사관 공동 주최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 미래 전망과 언론 역할’ 미디어 전문가 포럼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양규현 아주일보 사장, 이학영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 김건 국회의원(국민의힘), 정의혜 한국 외교부 차관보,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등 기업 및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첫 세션의 발표자로 나선 신봉섭 전 선양총영사(광운대학교 교수)는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 고착을 전제로 한 한국 외교 구조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기존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접근이 구조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며 “안보·기술·공급망 등을 영역별로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보건·식량·중소기업 등 정치적 위험이 낮은 블루존 협력을 중심으로 한중 협력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표를 맡은 망구신 인민일보 서울지국장은 정상회담이 5년 만의 국빈 방문이자 양국 정상의 첫 대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망 지국장은 한국과 중국을 “떼어낼 수 없는 파트너”라고 표현하며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전략적 소통 강화, 신산업 기반 경제 협력, 인문·청년 교류 확대, 국제무대 협력 강화 등 네 가지 방향이 향후 양국 관계의 설계도”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중이 이미 경제·산업 공급망에서 높은 상호 의존성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한국 내 반중 인식과 온라인 기반 오해가 관계 안정성의 현실적인 장애 요소”라며 “언론이 사실 기반 정보 제공을 통해 인식 왜곡을 줄이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첫 세션 토론에서는 김희교 광운대 교수와 황재준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민주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는 한·중 관계가 ‘안보 경쟁–경제 의존–기술 경쟁–여론 변동’이 중첩된 구조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중 관계 관리에 있어 국내 여론의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략적 현실주의와 인식관리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중 언론의 역할 및 협력 방안’을 주제로 언론의 구조적 역할이 논의됐다. 이석우 파이낸셜뉴스 국제부장은 한·중 정상회담의 주요 성격을 민생·경제 중심의 실용 협력으로 평가했다. 이 부장은 “금융범죄 대응, 통화스와프, 자유무역협정 후속 협상, 인적 교류 확대 등 실질적 협력 의제가 부상한 반면, 북한 문제나 한한령 등 주요 현안에서는 구조적 제약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국 관계 복원 과정에서 상호 인식 개선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왜곡 정보와 혐오 표현이 양국 국민의 인식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인식 격차가 한·중 관계의 장기 병목”이라고 말했다. 노성해 중국미디어그룹(CMG) 서울지국장은 양국 미디어가 수행해야 할 역할로 올바른 국가 이미지 전달, 정책 이해 제고, 오해 완화, 문화·인문 교류 촉진 등을 제시했다. 현재 미디어 환경의 도전 요인으로는 정치·안보 이슈의 민감성, 온라인 여론의 급변, 허위정보 확산, 정보 접근성 차이를 꼽았다. 노 지국장은 “신뢰·진실·교류 기반의 협력 체계와 지속적·체계적 협력 플랫폼 구축이 관건”이라며 “공동 취재·공동 프로그램 제작, 정례 브리핑·팩트체크 협업, 청년 기자 교류, 영상·AI 기반 콘텐츠 공동 제작 등 협력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단기·중기·장기 로드맵을 구분해 공동 취재 확대, 공동 프로그램 구축, 공동 브랜드 콘텐츠 개발로 이어지는 체계적 협력을 구조화해야 한다”며 “이에 따른 문화·경제 협력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과 한·중 국민 간 상호 이해 증진의 기대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에서는 박성훈 전 JTBC 베이징 특파원(현 중앙일보 기획취재)과 정용재 KBS PD는 중국 취재 경험을 기반으로 한·중 보도의 현장적 과제를 언급했다. 두 토론자는 청년 교류와 일상적 협력 사례를 꾸준히 발굴해 보도하는 것이 양국 인식 개선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중 관계가 안보 갈등과 경제 상호 의존, 기술 경쟁과 민생 협력이 동시에 얽힌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언론의 역할도 단순 전달을 넘어 사실 검증과 갈등 완화, 교류 확대의 매개로 확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참석자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된 관계 복원 흐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도 양국 미디어의 지속적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25-12-05 18: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