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사진전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진이 현대미술을 만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크람 자타리(52)의 '사진에 저항하다'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오는 8월 1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크람 자타리의 사진·영상·설치 작품 등 30여점이 소개됐다.
자타리 개인전은 총 4개 기관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서 첫 번째 전시가 열렸고, 이후 독일 K21 현대미술관에서 두 번째로 전시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세 번째이고, 올해 가을에는 사르자미술재단(이집트)에서 네 번째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레바논 출신의 자타리는 현재 수도 베이루트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자타리의 주요 작품 소재는 사진이다. 그것도 자신이 찍은 것이 아닌 과거의 필름 사진을 모아 디지털 아카이브(archive·기록 보관소)를 만들고, 사진의 내용이 아닌 사진 자체를 작품의 소재(오브제)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자타리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사진을 수집하는 작업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자타리는 레바논 독재 정권이 무너진 1997년 동료 작가들과 아랍이미지재단(AIF, Arab Image Foundation)을 설립하고 사진을 수집해 오고 있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업을 "고고학자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한 자타리는 "고고학자들이 유적지를 발굴하고 뭔가를 캐내는 것처럼 내가 뭔가(사진)를 연구하고 탐구하면 그 결과가 나의 작품 활동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타리는 작품의 의미를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닌, 사진과 사진과의 결합이나 사진과 다른 소재의 어울림에서 찾았다.
자타리는 "의미라는 것은 뭔가 두 개의 다른 것을 가까이 밀착시키면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두 개의 다른 것들을 겹쳐주거나 밀착되게 함으로써 뭔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즉, 자타리는 사진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을 뒤틀어서 바꾸고 싶어 했고, '사진에 저항하다'전은 이러한 시각으로 시작됐다.
자타리는 "사진의 역사를 쓸 때는 사진이 뭘 설명해주고 묘사를 해주느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가 뭔지도 설명해줘야 한다"며 "사진 그 자체를 뒤집어 보면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4개의 방으로 나눠진 제5 전시장의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얼굴을 맞대고(Faces to faces)' 작품이 보인다.
작품은 2개의 유리판(플라스틱 필름 전에 사용하던 유리 필름)이 들러붙어서 두 인물이 겹쳐 보인다. 하나는 1940년대 프랑스 군인이고, 또 하나는 레바논 트리폴리에 살고 있었던 시민의 얼굴이다.
아주 우연히 유리판들이 들러붙음으로써 이들이 만나게 됐다.
작가는 사진의 내용보다는 네거티브 필름(촬영한 필름을 현상했을 때 명암과 컬러가 실제의 피사체와는 반대로 재현된 음화)이 겪은 여러 현상과 사고들을 보여주고 있다.
'필름의 본체(The body of Film)' 작품은 1948년 예루살렘 모습을 라이트박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집이 폭격당한 사진작가가 암실 없이 작업한 사진이다.
네거티브 필름을 제대로 세척하지 못 했기 때문에 감광 유제가 손상돼서 마모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타리는 "네거티브 필름이 세월을 거치면서 마모되거나 스크래치가 생기거나 손상됐을 때, 중간중간에 스토리가 있다"며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분리되지 않은 역사(Un-Dividing History)'는 2명의 사진작가 작품을 결합한 것이다.
한 명은 팔레스타인의 사진작가이고, 한 명은 유대민족주의자 사진작가이다. 수년 동안 두 작가의 작품들이 같이 소장되어 있다 보니까 한쪽의 이미지가 다른 쪽에 묻게 됐다. 그래서 두 작가의 작품이 결합해 한 작품이 됐다.
자타리는 이 연작을 통해 분열하는 역사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하고자 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도 사실은 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분할됐듯이, 원래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사진에 저항하다(Against Photography)' 작품은 사진이 단순히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은 손상된 네거티브 필름을 앞뒤로 3D 스캔을 한 다음에 판재에 인쇄한 것이다.
사진에 기록된 이미지 외에 네거티브 필름이 겪은 마모와 손상에 대해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대형 유리 작품인 '고고학(Archeology)'은 트리폴리에 살았던 사진가의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유리로 된 네거티브 필름이다.
그 스튜디오가 물에 잠겨서인지 이미지가 절반 정도 훼손돼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미지가 완전히 없어졌다면 아마도 '사진에 저항하다' 작품 쪽에 진열됐을 것이다.
작가는 최근에 '고고학'이라는 개념적인 틀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고학자처럼 사진 자체를 발굴해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작품 활동으로 연결한다.
마지막 네 번째 방은 아랍이미지재단(AIF)이 전시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아랍이미지재단이 처음 설립됐을 때 작가들이 중동지역과 기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수집했다.
전문 스튜디오 사진부터 개인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에서 자타리 작가는 뭔가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고 생각했다.
'운송수단(The Vehicle)'이란 작품은 이전 작품인 '운송수단: 근대화하는 사회의 과도기적 순간을 상상하다(1999)'를 재작업한 것으로, 자동차 사진을 소재로 한 것이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찍힌 자동차에 대한 사진들이다. 카메라와 현대 운송수단의 발명으로 인해 아랍 국가들이 어떻게 현대화 과정을 겪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99년 시리즈를 업데이트하면서 사진의 앞쪽 면과 뒤쪽 면을 같이 보여주고, 그 밑에는 이 사진을 언제 재단이 인수했고, 누가 수집했고, 어디서 왔는지를 기록한 아카이브 정보가 담겼다.
이 작품을 통해 아랍이미지재단의 이미지 수집 관행을 엿볼 수 있다.
'사진가의 그림자(A Photographer's Shadow)'는 사진 안에 사진을 찍는 사람의 그림자가 있는 작품을 모았다.
어떤 지역에서 수집된 작품이든 간에 그 시대의 사진들을 보면 피사체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온다. 그 당시에는 사진이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이런 실수를 했다.
전시장 맨 위쪽에는 '계급의 건설'이라는 커다란 사진 작품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사진에는 부유한 가족이 낙타를 타고 일꾼들하고 나들이를 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일꾼들은 낙타를 잡고 있어야 하므로 사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진작가는 일부러 일꾼들의 얼굴을 까만색으로 지워버렸다. 사진에서 일꾼은 투명인간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당시의 유명한 사진작가들은 작품에 노동자 계급의 모습을 담지 않았다.
전시장 벽면에는 아랍이미지재단의 20년 역사를 개념적으로 연대순으로 표시해 놨다.
아랍이미지재단이 수집한 사진의 숫자와 수집한 나라, 국가별로 정리한 다양한 컬렉션의 제목 등이 표시돼 있다.
아크람 자타리 작품은 사진이 현대미술을 만나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 오브제로 영역이 확장되고 오브제와 오브제가 만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등 작가의 놀라운 상상에 빠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