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인왕사 자락에 600평 규모의 프랑스식 호화 별장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없는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관료였던 윤덕영의 집이다. 이 집 옆에 청와대 모습도 보인다.
화재로 소실되어 1970년대에 철거된 이 집을 현대의 풍경과 같이 그려 놨다. 있는 건물을 없애기도 하고 없어진 건물을 만들어 내서 그린 것이다.
작가는 작품 '청풍계1' '청풍계2'에서 사료 연구와 답사를 통해 장소에 내재한 시간성을 복구,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본 화면들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민정기 작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사직단, 세검정, 경희궁 등 고건물과 인왕산, 백악산, 북한산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다. 마치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풍경의 주마등' 같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는 3월 3일까지 올해 첫 번째 전시로 민정기 작가의 개인전 'Min Joung-Ki'를 개최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처음 개인전을 여는 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풍경을 소재로 한 구작 14점과 신작 14점 등 총 28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 작품이 전파를 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북한산의 지형을 자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2007년 작가의 개인전 전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었다.
지난달 29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민정기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축하 인사와 격려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다양한 시점과 시간, 역사가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백사실계곡 등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재구성됐다.
'사직단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사직단 뒤로 인왕산 주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현대식 건물과 도로가 있다. 과거 경복궁에서 사직단에 행사가 있을 때 왕가가 이 길을 통해서 올라갔다고 한다.
민정기 작가는 "어가를 들고 앞뒤로 무사들이 호위하고 넓지 않은 길을 통해서 다가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 지금은 달라진 주상복합과 음식점들을 보면서 그렸는데 이 그림에는 속임수 하나 있다" 며 "오른쪽에 은행나무 가로수를 하나 더 새워서 그림이 더 (넓게) 나오게 연출했다"고 고백했다.
사직단 앞의 주상복합 건물은 '사직동' 작품에도 등장한다. 이 작품에는 주상복합건물과 맥줏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뒤편에는 역시 사직단과 인왕산성, 활 쏘는 장소 등이 보인다.
'인왕산, 보현봉, 백악산이 보이는 풍경' 작품은 도심에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백악산, 인왕산, 북한산 보현봉이 보이는 풍경을 담았다.
"도심에서는 산들이 건물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어느 댁 3층에 올라갔더니 앞에 큰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고 있었다. 산들이 보여서 그림을 그렸다."
예로부터 시인·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인 6각 정자 세검정(洗劒亭) 모습도 흥미롭다. '세검정 주변 풍광' 작품에는 세검정 앞에 파천대가 있고 파천대를 중심으로 항상 볕이 드는 왼쪽과 그늘져 있는 오른쪽으로 구분된다. 뒤편에 있는 북한산의 산세는 실제 모습이 아닌 겸재 정선의 그림을 인용했다.
겸재 정선의 '청풍계'를 따온 그림은 '백세청풍1'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비탈과 3개의 연못, 바위 등이 겸재의 그림에도 나온다. 이 바위 옆의 길을 통해서 산꼭대기로 오르고, 길 중간에는 망가져 있는 집들도 가끔 등장한다.
복원한 경희궁의 모습은 '명당도1' '명당도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경희궁은 과거의 경희궁보다 훨씬 작은 규모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경희궁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서울고등학교를 지었다. 이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 지금의 경희궁이다.
변화한 청계천의 모습도 '박태원의 천변풍경'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3폭의 천변풍경은 청계천을 덮는 공사, 덮개를 걷어내고 물길을 만드는 풍경, 청계천 물가에서 빨래하는 전경으로 구성됐다.
박태원 작가의 소설 '천변풍경'에 이발소 얘기가 등장하는데 그것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때 김가진 장군의 독립운동 역사를 담은 2개의 작품도 눈에 띈다.
'토교 우리촌'은 김가진 장군이 일제를 피해 도착한 중국 중경 서부지역 토교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과 같이 방문한 뒤 설명을 듣고 당시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김자동 회장은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던 정정자 여사의 아들로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독립운동가들의 품에서 자랐다.
"일종의 복원도인데 지금은 그림에 있는 나무도 다 없다. 커다란 제철소 공장이 들어서서 강이 오염되고 주변이 엉망이 됐다. 지금의 그런 곳을 다 없애고 예전에 그분들이 주거하던 공간, 교회,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던지는 훈련을 했던 들판 등이 표현했다."
토교 마을 앞에 흐르던 강에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고, 그곳은 '화탄계에서 장강으로' 작품으로 남았다.
국제갤러리 K2전시장 2층에는 풍경화가 아닌 누드 판화 '숲에서' 연작이 전시됐다.
1986년에 제작한 석판화로 70년대 말과 80년대 억압받았던 유신 시대의 억압과 해방을 표현한 것이다.
"연극과 학생들하고 숲에 가서 촬영했다. 그때 학생들한테 누드로 움직이라는 부탁은 못 하고 가벼운 옷을 입혀 움직임을 관찰했다. 촬영하고 각색해서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