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여자 프로골퍼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그런데 LPGA 투어 풀시드권을 획득하고도 진출 여부를 고민하는 느긋한 선수가 있다. 이미 2년 연속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경험 삼아 나간 LPGA 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를 수석 합격한 이정은6(22)의 이야기다.
“아직까지는 내가 왜 미국(LPGA 투어)에 가야 하는지, 미국에 가면 뭐가 좋은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정은이 지난 11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종전인 ADT캡스 챔피언십을 마치고 2년 연속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거머쥔 뒤 남긴 말이다. 이정은에게는 아직 미국 진출에 대한 확실한 동기 부여가 없었다.
이정은은 지난해 국내 무대를 접수했다. KLPGA 투어 시즌 6관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은 숫자 ‘6’을 따 ‘핫식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해도 뜨거웠다. 잦은 해외 원정으로 국내 대회는 10차례나 불참했지만, 메이저 대회에서 2승을 수확하며 상금왕(9억5764만원)과 최저타수상(69.87타) 등 2관왕에 올랐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정은은 “2관왕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2년 연속 상금왕을 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올해 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은 흐름에 힘들었는데 좋은 흐름으로 바꿔 메이저 2승까지 했다. 잊을 수 없는 한 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정은은 올해 자신에게 작년보다 높은 98점을 주며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큰 수확은 내년 LPGA 투어 시드권 획득이다. 하지만 이정은은 미국 진출과 관련해선 신중했다. 국내 무대를 2년 연속 평정한 ‘준비된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정은은 “Q시리즈 참가 신청기간이 지나면 미국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니까 일단은 경험 삼아 Q시리즈에 참가했다”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수석 합격을 했지만 곧바로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정은이 미국 진출을 놓고 당장 고민하는 것은 시의성과 필요성이다. 이정은은 LPGA 투어를 무조건 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등 떠밀려서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고 목표도, 갈 수 있는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정은은 “바로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준비가 완벽히 된 후에 가고 싶다. 이번 겨울에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집, 차, 매니지먼트, 언어 등 모든 환경이 원하는 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확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금 이 정도가 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고, 지금의 난 큰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지금 적응도 안 되고 목표 설정도 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정은이 확실히 정한 건 한국과 미국 투어의 병행은 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프로’를 강조했다. 이정은은 “미국이나 한국 가운데 하나를 정해서 뛸 것”이라며 “LPGA 진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도쿄 올림픽은 너무 먼 이야기다. 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고, 이게 내 직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LPGA 투어 진출을 앞두고 장고에 들어간 이정은. 그에게 필요한 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다. 그는 “일단 지금은 쉬고 싶다. 내년에도 다시 열정적으로 골프를 하기 위해···”라고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