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서 서로 꺼리는 일이 있다. 사채시장을 관리·감독하는 일도 그렇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원장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금융감독원 재직 시절 얘기다.
군대에서 탱크를 운전했던 그는 자신도 탱크처럼 후진 없이 앞만 보며 달린다고 한다. 이런 성격이 단점이 될 때도 있지만, 업무 추진에 속도를 내도록 도와줬다. 37년간의 한국은행, 금감원 생활을 마친 그는 지금 '금융소외 없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위험한 사채시장 감독에 고군분투···조직에선 '미스터 쓴소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요. 승부욕이 강해서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려요." 28일 만난 조성목 원장은 금감원 재직 당시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위험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한 사채시장에 뛰어들어 고리대금업자들의 폭리행위를 감독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여년 전 일을 들려줬다. 오후 1시 30분께 사채피해신고가 들어왔고, 수화기 너머로 젊은 여성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사태파악에 나섰다. 사채를 쓴 이 여성이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이 신체포기각서를 쓰도록 강요했고, 경주의 한 다방으로 팔아넘기려던 순간이었다.
사채업자들이 찾아오기로 한 시각이 오후 2시였고, 인신매매를 당하기 30분 전 용기를 내 신고한 것이다. 조성목 원장은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 여성을 무사히 구출했다. 그러나 붙잡힌 사채업자들은 이틀 만에 풀려났다. 실제 인신매매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그날부터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협박을 받아야했다. 조성목 원장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장기매매, 인신매매를 끝까지 추적해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다"며 "동료들이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사채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려야했다"고 말했다.
그의 주머니속엔 항상 사표가 있었다. 조직 내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최초로 사금융피해상담센터를 설립하고, 서민맞춤대출서비스 한국이지론을 기획하는 등 성과를 내자 조직 내에서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2010년 조성목 원장은 전국을 뒤흔든 '저축은행 사태' 진화의 책임자로 나섰고, 33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과 여신상시감시시스템을 구축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한 ‘그놈 목소리’ 정책도 기획했다.
조성목 원장은 "사채, 불법대부업자들을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어디서 어떻게 돈을 빌려야 할지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가장 유리한 대출 상품을 안내하도록 구상했다"고 밝혔다.
조성목 원장의 쓴소리는 퇴임 직전까지 이어졌다. 금감원을 떠나기 전 금감원장실에 들어갔고, A4용지 1장에 "원장님 제발 소신 있는 인사를 하십시오"란 내용을 담아 전달했다.
◆직접 발로 뛰며 회원 확보… "전국규모 서민금융 상담망 만들 것"
조성목 원장은 2016년 선임국장을 끝으로 금감원 생활을 정리했다. 경력의 대부분을 서민금융 분야에서 보낸 만큼 관련된 연구기관을 세우기로 다짐했다. 쉽지는 않았다. 인맥으로만 회원을 모으는데 한계에 부딪혔다.
그는 가입신청서를 들고 직접 발로 뛰며 회원모집에 나섰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이건선 부림저축은행 회장, 임승보 대부업협회장, 한대호 전 저축은행중앙회 상무 등이 회원에 등록하며 조성목 원장을 응원했다.
발기인 19명으로 시작한 단체가 2년 만에 단체회원 61개, 개인회원 190명 규모로 성장했다. 조성목 원장은 올해부터 양적인 성장보다 내실을 더욱 다질 방침이다.
그는 "회원사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는데 각자도생 하지 않고, 주특기들을 한데 모으면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며 "교육, 연수, 마케팅, 상담 등 각 분야를 통합시켜 궁극적으로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시스템화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전국 규모의 금융상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금융'을 실현하기 위해선 서민들이 실제 처한 상황을 진단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해서다. 그는 "진단이 곧 상담"이라고 강조했다. 또 당국이든 민간단체든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성목 원장은 "일례로 여기저기서 보이스피싱 예방교육을 한다고 전문가를 초빙하지만 체감도가 떨어진다"며 "우린 진짜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있는 분을 강사로 섭외했는데, 이게 바로 마인드의 전환이다"고 밝혔다.
이어 "서민들도 일자리가 부족하다, 정부 보조금이 적다 불평만 할 게 아니다"며 "직접 상담을 요청하고, 상환능력 등을 전문가에게 묻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적극성을 보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사채업, 대부업을 이용해 본 저신용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3800명의 모집단을 구성해 설문조사를 했다. 서민들이 믿을 수 있고,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조성목 원장은 "도움을 준 많은 분들 중 선배보다 후배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며 "후배를 거꾸로 하면 배후가 되는데, 자신의 배후세력이 곧 후배들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원장 이력
=1961년 5월 충남 부여 출생
=강경상고-경기대 경제학과(학사)-연세대 경제대학원(석사) 졸업-경기대 경제학 박사과정 중
=1979~1997년 한국은행 입행, 국고부, 외환관리부, 은행검사국 검사역
=1997~2016년 금융감독원 저축은행 검사1국장, 여신전문검사실 국장, 선임국장
=2016~현재 SK루브리컨츠 고문
=2017~현재 서민금융연구원 원장
=2018~현재 제2기 금융위원회 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