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중국의 정치적 문제로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홍콩은 아시아 금융의 확실한 허브역할을 해왔다. 세계 각국 금융사나 글로벌 금융사들은 물론이고 언론들도 아시아본부를 거의 대부분 홍콩에 두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홍콩에는 기업 리서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2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이 리서치회사들은 아시아 각국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신용도는 물론이고 평판을 조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홍콩의 리서치회사로부터 기업의 평판조사를 의뢰 받았다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업신용평가기관들이 있지만 기업에 대한 재무적, 비재무적 평가 이외에 내밀한 기업 사정까지 조사해서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투자와 금융이 발달된 국가의 기업일수록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한 신용과 평판조사를 중요시한다.
20여 년간 외국 리서치기업으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아 간단한 평판 조사를 하는 국내 한 전문가는 경영자 평판 조회는 상당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상대기업에 투자나 거래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CEO나 이사회에서 담당부서와는 상관없이 은밀하게 평판 조사를 의뢰한다. 상황에 따라서 동일한 조사를 다른 기관에 복수로 의뢰해서 서로 크로스로 체크하고, 실제 담당부서에서 조사⋅보고한 내용과 확인을 한다. 3번의 조사 내용이 일치해야만 최종 승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만일 한곳이라도 조사 내용이 부정적이라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조사 시 의뢰인 상대방이 누군지, 어떤 기업인지 모르고 조사하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누가 의뢰했는지 조차 물어보지 않고 조사의뢰 질문에 충실하게만 조사한다. 조사 내용은 기본적으로 CEO와 기업의 도덕성, 정치적 연관성, 소송관계, 노사관계, 세금체납, 언론의 반응, 동종업계의 평판 등이다. 여기에 의뢰인이 집중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내용도 추가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 A기업 CEO에 대한 객관적인 평판조사 의뢰를 받고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굴지의 대기업 출신인 이 CEO는 전문경영인으로 경영하던 A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이 CEO의 업무 능력, 인물평은 물론 종교와 음주량 등 개인적인 것까지 조사해 보고했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도 외국 기업과 비슷하게 최종 의사결정 전에 상대기업, 특히 CEO나 주요 의사결정권자 성향이나 도덕성에 대해서 조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CEO 평판이 이제 더 이상 특정 국가, 기업만의 일이 아닌 이유다.
명동시장에서 기업정보를 전문으로 하는 명동인터빌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평판조사 등은 상당히 고도의 전문성과 중립성이 필요하다. 보안은 기본이고 도덕성도 요구된다”며 “기업들도 이제는 ESG 경영이 중요한 시대에 관련부서를 만드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