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적극 추진하면서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자산의 역할과 가치에 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전통자산과 달리 내재된 가치가 없어 중앙은행의 검증을 거친 CBDC가 지금의 암호자산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비트코인이 사실상 달러 헤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이미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특정 가치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전통 경제학자들 “CBDC가 암호자산 대체한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비트코인은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며 극도로 변동성이 높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며 “투자자들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손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미국 연준 의장을 거쳐 현재 재무부 장관을 역임 중인 미국의 ‘경제통’이다. 그는 전세계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불었던 2017년부터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불완전하며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여러 가지 기준이나 판단의 척도로 볼 때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은 이상 급등이 아닌가 싶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왜 이렇게 높은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이처럼 전통경제학 출신들이 비트코인을 ‘투기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트코인이 내재화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은 장신구를 만들거나 전자제품의 재료로 쓰인다. 보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산업용으로도 충분한 활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업 주식이나 채권의 경우도 경제활동을 진행하는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기업 그 자체가 내재가치인 것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거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기능만 있을 뿐, 내재 가치가 사실상 없다. 거래 수단으로 이용하려해도 변동성이 너무 크다. 비트코인은 하룻밤 사이에도 20%씩 등락 반복한다. 올해 들어 평균 변동성은 5% 내외 수준으로 집계된다. 즉, 비트코인을 사서 가만히 있어도 5%가 오르거나 5%가 내려있을 수 있다. 만일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산다면, 불과 10분 전에 산 물건 값이 5% 오르거나 내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중앙은행 주도 하에 CBDC를 발행하면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 사장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량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변동성을 줄일 수 있고, 결제 분야에서 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CBDC는 모든 개인들이 중앙은행을 통한 거래를 허용해 현금, 기존 은행계좌, 디지털 결제 서비스 수요를 줄일 것”이라며 “CBDC가 발행되면 그 즉시 확장성 없고, 저렴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암호자산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 저장 수단은 매력적···2·3세대 블록체인 기술도 주목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궁극적으로는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는 활용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중앙은행이 발행할 CBDC가 거래수단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커 비트코인의 매력이 반감하지만, 가치저장 수단으로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CBDC가 그린 화폐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CBDC가 등장하면 차세대 거래수단으로의 역할을 모색했던 암호자산의 입지가 위축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희소성, 영속성, 편의성 등의 특성을 지녀 가치저장 수단으로의 매력은 유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비트코인은 디지털 상에서 거래가 쉽게 이뤄지기 때문에 금보다 접근성이 우수하다”며 “비트코인 보유자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점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신뢰성이 강화되는 증거이며 비트코인과 금의 시가총액 차이는 시간을 두고 축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러나 원화 등 기존 가치가 연동돼 가격이 결정되는 스테이블코인을 함께 사용하면 비트코인을 결제에 무리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다시 비트코인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변환해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비트코인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분증명(PoS) 방식이 적용되는 이더리움 2.0 업데이트 등 다양한 기술 대안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PoS는 코인을 보유한 지분의 양에 따라 비례해 보상을 제공한다. 특히 이더리움은 단순 결제수단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디앱(dApp)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어, 발행된 코인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내재하게 된다.
블록체인 업계 한 관계자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1세대이고 이더리움과 이오스 등 더욱 고도화된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며 “지분증명 방식이나 일부 대표자에게 권한을 일임하는 위임지분증명과 같은 방식의 프로젝트라면 가상자산도 충분히 가치를 내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