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은 네이버와 함께 경기도 군포에 e풀필먼트센터 가동을 시작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이 센터는 온라인으로 주문된 상온 제품의 보관부터 포장, 출고 등 전체 물류과정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인근 택배 허브 터미널과 연계해 배송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익일 배송을 지원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시점이다. 지난 17일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지 3일 만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단 글이 17만여건 올라오는 등 쿠팡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19일 이후 단 하루 만에 네이버가 '익일배송' 카드를 꺼내든 셈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그동안 꾸준히 쿠팡 대비 약점으로 꼽혔던 물류·배송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준비해왔고, 그 일환으로 일찍이 CJ대한통운과 지분교환도 추진한 바 있다"면서도 "교묘하게도 익일배송 서비스를 발표한 시점이 쿠팡의 불매운동이 불거진 시점과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네이버가 '쿠팡 대체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심어주게 됐다"고 덧붙였다.
풀필먼트센터를 통해 배송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이유는 주문마감 시간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반 택배는 포장·잡화 등 작업시간을 고려해 오후 3시께 주문이 마감되지만, 이번 풀필먼트센터는 1시간 거리에 있는 곤지암 메가 허브로 발송해 처리할 수 있어 마감시간이 자정까지 연장된다. CJ대한통운 측은 "상품의 대기와 이동 시간이 줄면서 소비자가 밤 12시까지 주문한 상품도 다음날 받아볼 수 있다"며 "퇴근 후 여유롭게 주문하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은 오는 8월엔 경기도 용인에 냉장·냉동 등 저온보관 제품에 특화된 콜드체인 풀필먼트(c풀필먼트) 센터를 가동한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물류 수요예측 인공지능(AI)인 '클로바 포캐스트'를 군포와 용인 센터에 적용할 예정이다. 클로바 포캐스트를 이용하면 네이버 쇼핑 주문량을 하루 전에 예측해 물류센터의 인력배치와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다. 이같은 물류 협력은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이 지난해 10월 지분교환을 통해 사업협력 관계를 맺은 데 따른 것이다.
이와함께 신세계그룹은 최근 이베이코리아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이커머스 3위'를 넘보게 된 데 이어 '대형마트 새벽배송'에 대한 기대감까지 품게 됐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대형마트·준대규모점포 매장에서 이뤄지는 통신판매에 대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그간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막혀 영업시간(오전10시~자정)에만 배송을 할 수 있어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시행된다면 영업시간 외 심야시간이나 휴업일에도 온라인 상품 배송을 추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은 핵심 물류시설인 '네오'(NEO)를 증설할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가능해지면 전국 이마트PP센터를 통해 물류·배송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SK텔레콤 자회사인 11번가는 매일 정오까지 주문하면 당일 배송받을 수 있는 '오늘주문 오늘도착' 서비스를 이달 초부터 개시했다. 11번가의 파주 물류센터에 입고된 상품을 SLX택배가 배송하는 방식이다. 11번가는 지난 4월 우정사업본부와 협력해 평일 자정까지 주문한 상품을 다음날까지 배송하는 '오늘주문 내일도착' 서비스를 전국 시행하는 등 배송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혔던 물류 기반 '로켓배송' 따라잡기에 경쟁사들이 혈안이 된 상황"이라면서 "이제는 각 이커머스 업체들이 보편적 서비스로 익일배송을 갖추게 된 상황에서 쿠팡은 악화된 여론을 빠르게 잠재우고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락인'(Lock-in)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