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지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은 화장품 업계서 결코 등질 수 없는 시장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총 5000억위안(97조원)을 돌파하며 전 세계 2위에 올랐다. 이에 중국의 대외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어떻게든 현지 시장을 뚫고 나가야 하는 나라임에는 변함이 없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의존도가 컸던 탓에 현재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날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다. 화장품 사업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넘게 감소하며 전체 실적도 악화될 위기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오는 11월 11일 중국 최대 소비행사인 광군제가 열릴 예정이어서 올 하반기 만족할 수 있는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LG생활건강은 올 2분기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중국 사업에서의 실적 감소가 영향을 끼친 탓이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9% 감소한 1조8627억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35.5% 감소한 2166억원을 기록했다. 뷰티(화장품) 사업만 따져보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6% 감소한 8530억원, 영업이익은 57.4% 감소한 933억원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중국 내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 봉쇄로 생산·물류·매장 운영 전반에 제한을 받아 중국 매출이 부진한 상황이다.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약 50%다.
LG생활건강 측은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중국 봉쇄정책이 2분기 내내 중국 현지 사업에 큰 영향을 줬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지속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며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중국 화장품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0.7% 성장했지만 8월에는 6.4% 역성장했다. 여기에 위안화 약세로 중국인 따이공(보따리상)들의 구매력도 약화되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면세품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올 3분기 매출액은 1조9352억원, 영업이익은 25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 26.6%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건 중국 현지 소비 둔화와 면세 채널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LG생활건강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신성장 동력으로 주력하고 있는 북미 시장의 경우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지 진출에 안정적인 토대를 닦는 모습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진정한 글로벌 명품 뷰티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글로벌 최대 시장인 북미시장에서 사업 확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4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게 인기를 끄는 미국 뷰티 브랜드 ‘더크렘샵’의 지분 65%를 1억2000만달러 (당시 약 148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더크렘샵은 오프라인 리테일 채널 중심으로 월마트에 입점하는 등 영향력을 키우고 자사몰·아마존 등 온라인 채널 내 성장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프리미엄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를 운영하는 ‘보인카’를 인수했다. 1억달러(당시 약 1170억원)를 투자해 지분 56%를 확보했다. 알틱 폭스 역시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MZ세대 고객을 확보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또 지난 2019년에는 ‘더 에이본 컴퍼니’를 시작으로 ‘피지오겔’ 등을 인수하며 북미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북미와 함께 일본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현지 MZ세대 사이에서 한국 패션·화장 등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한국의 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제 4차 한류붐’이 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LG생활건강은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와 건강기능식품 통신판매 업체 ‘에버라이프’를 인수해 일본 사업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일본 훗카이도에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을 연구 개발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센터’를 설립했다. 글로벌 고객 감성과 피부 경험을 고려한 마이크로바이옴 소재를 개발해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또 자사 화장품 브랜드 ‘CNP’와 ‘오휘’ 등의 일본 매출도 두 자릿수 이상 커지면서 이익 개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올해 안에 ‘후’를 북미 시장에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등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입지를 견고히 하며 영향력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K팝·K콘텐츠 강세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시점에 현지 마케팅 및 영업 역량을 활용해 사업을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中 광군제 휩쓴 LG생활건강…올해도 저력 발휘할까
LG생활건강은 매년 진행되는 광군제(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역대 최대 판매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알리바바와 틱톡 중심으로 진행된 광군제 행사에서 고급 화장품 후, 숨, 오휘, CNP, 빌리프 등 브랜드 매출이 3700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지난 2020년 광군제 매출 2600억원보다 42% 성장한 규모다.
가장 비중이 큰 후 브랜드의 전체 매출은 3294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61% 증가했다. 후는 알리바바에서 에스티로더, 랑콤에 이어 고급 화장품 브랜드 3위에 올랐다. 특히 후 천기단 화현세트는 88만 세트가 팔려 알리바바 전체 카테고리 단일제품(SKU) 중 애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용 카테고리만 놓고 보면 전체 단일제품 가운데 1위에 올랐다. 틱톡 채널에서는 후 천기단 화현세트 30만 세트가 판매돼 미용 카테고리 1위를 차지했다.
후는 올 상반기 중국 최대 행사인 6.18 쇼핑 축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플랫폼 더우인과 콰이쇼우 내 화장품 매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후는 LG생활건강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로, 고급 ‘궁중화장품’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지난 2006년 중국에 론칭했다. 글로벌 브랜드가 흉내 낼 수 없는 차별화 전략으로 당시 중국 고객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후는 브랜드 입점에 있어서도 단순히 매장을 많이 확대하기보다 고급 백화점에 집중적으로 입점했다. 현지 고객들에게 고급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며 입지를 다졌다. 현재 후는 상해의 ‘빠바이빤(八百伴), ‘지우광(久光)’, 북경의 ‘SKP’ 등 중국 주요 대도시의 최고급 백화점 200여 곳에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VIP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주요 대도시와 거점 지역 내 주요 백화점에서 브랜드 홍보 행사를 실시하고, VIP초청 뷰티클래스 등 중국 내 상위 5% 고객 공략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올해 상반기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오는 11월에 열리는 광군제 행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광군제는 4분기 실적을 좌우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중국 내 주요 도시 봉쇄는 해제됐고 물류도 정상화하고 있지만 아직 중국의 소비 회복 강도가 크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중국 사업 회복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광군제 특수 효과도 미지수가 됐다. 박현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4분기에는 광군제 수요와 중국 10월 당대회 이후 소비 부양책 확대 등으로 소비 경기가 미약하게나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