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팹(반도체 생산) 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 취약점으로 꼽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부문을 육성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양팽 한국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미 반도체 보조금 인센티브 심사 기준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미칠 위기와 도전'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제언했다.
김 위원은 이날 "미 반도체법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투자 수익으로 (미국) 국가 안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 반도체법 발효 당시만 해도 국내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되면서 미국과 함께 한국·일본·대만 등 반도체 강국을 아우르는 동맹이 구축되는 듯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미국은 반도체법에 자국 이기주의를 담았다. 미국 정부에게 보조금을 받으려면 민감한 회계·재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원금 1억5000만 달러(약 1962억원) 이상을 받는 기업에서 실제 현금 흐름과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하면 이미 지급한 보조금을 75%까지 환수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투자를 하지 못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사실상 중국에서 공정 미세화를 포함해 투자를 포기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2012년부터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258억 달러(33조7500억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약 10조원을 들여 인텔 낸드사업부(솔리다임)를 인수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은 "기업은 대만 TSMC 동향을 예의주시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정부는 미국 정부와 보조금 조건 완화를 협상해야 한다"며 "특히 중국 투자 제한 범위 축소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는 공격적으로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신 공정 개발·도입에 편중된 투자를 팹리스 분야로 확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왕성호 네메시스 대표이사는 "국내 팹리스 업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대로 대만과 중국에 크게 밀린다"며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발전했고 우수한 인력이 있어 팹리스 분야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인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정작 반도체 설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왕 대표이사는 단기에 인력을 키울 방안으로 '시스템 반도체 설계 아카데미' 신설을 꼽았다. 장기에는 반도체 설계 석·박사 과정을 정부가 지원해 학생을 증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왕 대표이사는 "기업도 팹리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며 "인수합병(M&A)을 통해 팹리스 규모를 키워 제품군을 늘리고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김홍걸 무소속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조정식∙김한정∙박정∙김경만∙박영순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김홍걸 의원은 "반도체 업계에 찾아올 위기를 최소화하고 재차 도약할 계기를 마련하려면 현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업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급변하는 환경에 반도체 기업이 대응할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