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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성상영의 뷰파인더] 한국 배터리 '빅픽처'…미·중 잇는 '가교'로 우뚝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성상영 기자
2023-05-05 06:00:00

미·중 패권 경쟁 속 투자·합종연횡 봇물

배터리 업계, 국내 '소재 허브' 구축 활기

IRA 요건 충족한 韓, '중개인' 역할 자임

전남 광양시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공장 전경[사진=포스코퓨처엠]


[이코노믹데일리] 일주일에 이틀뿐인 꿀 같은 주말, 직장인들이 재충전하는 시간에도 산업 일선은 분주히 움직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소식이 쏟아지는 요즘, <뷰파인더>는 바쁜 일상 속에 스쳐 지나간 산업계 뉴스를 꼽아 자세히 들여다 본다.

미국과 중국 간 제조업 패권 경쟁에서 한국 이차전지(배터리) 산업은 '중개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한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배터리 소재를 공급하는 허브를 자임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낸 모습이다. '샌드위치 신세'인 입장에 처한 또 다른 첨단 산업인 반도체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행보다.

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셀·모듈 제조사 이외에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 LG화학 등 소재 기업은 최근 경쟁적으로 국내 투자 계획을 내놨다.

배터리 소재 생산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은 경북 포항과 구미, 전북 군산, 전남 광양이 대표적이다. 주요 배터리 소재 기업은 이들 지역에 중국 화유코발트·거린메이(GEM) 등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단독 공장을 세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기업은 에코프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포항캠퍼스에 양극재 공장(CAM7)을 짓고 양산을 시작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시설투자를 2배가량 늘린다는 계획이다. 포항에 신(新)공장인 CAM8·CAM9를 연달아 착공해 양극재 생산능력을 올해 19만톤(t)에서 내년에는 28만t까지 끌어올린다.

이에 맞서는 포스코퓨처엠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화유코발트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전 단계 소재인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공장을 오는 2027년까지 포항에 짓는다. 포항 영일만 일반산업단지에는 연산 10만6000t에 이르는 양극재 공장이 들어선다.

포스코퓨처엠은 광양에도 배터리 종합 단지를 조성 중이다. 이곳에는 양극재와 전구체 공장이 생긴다.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는 전구체 원료인 니켈을 정제하는 공장을 짓는다. 2030년이면 포스코퓨처엠의 글로벌 양극재 생산능력은 연 61만t까지 늘어난다.

LG화학은 군산 새만금 국가산단과 구미에 양극재 생산시설을 구축한다. 두 곳에 들어서는 공장 모두 화유코발트와 합작사 형태로 만들어진다. 새만금에는 총 1조2000억원을 들여 연산 10만t 규모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 구미형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되는 구미 양극재 합작법인에서는 양극재 연 6만t이 생산된다.

새만금에서는 SK온과 에코프로, GEM이 '삼각동맹'을 맺기도 했다. 합작법인 이름은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지이엠코리아)'다. 지이엠코리아는 내년 하반기 공장이 완공되면 전구체를 연간 5만t 수준으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양극재와 전구체 모두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드려면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망가니즈 등 광물을 일정 비율로 결합한 소재가 반드시 쓰이는데 이것을 전구체라고 한다. 전구체에 리튬을 더하면 양극재가 완성된다. 그리고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과 평균 전압, 출력을 결정한다.

배터리 업계가 국내를 소재 생산 거점으로 삼은 데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이 컸다. IRA는 전기차 세액공제(보조금) 수혜 요건으로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차량일 것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한 핵심 광물을 사용할 것 등을 제시했다.

양극재가 핵심 광물로 분류되면서 미국·유럽에 집중해온 배터리 업계는 다시 국내로 눈길을 돌렸다. 무엇보다 중국 기업이 지분을 출자하더라도 한국에서 양극재와 전구체를 생산한 이상 IRA 보조금 요건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효했다.

개별 기업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FTA 체결국'이라는 틈새를 열어주면서 한국 배터리 산업은 미·중을 잇는 가교라는 '빅빅처'를 완성하게 됐다. 국내에서 생산된 양극재는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공급돼 현지에 넘쳐나는 전기차 수요를 감당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알기 어렵지만 현 시점에서 국내 투자를 늘리는 게 맞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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