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아마도 우리나라 사극에서 상투 튼 남자가 얼마나 멋질 수 있는지 보여준 첫 번째 드라마가 MBC의 ‘다모’, 황보윤 종사관이었을 것이다. ‘다모’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명대사와 애절한 스토리로 사상 처음으로 드라마 팬덤을 만든 역사를 썼다. 사극에서 왕이 이렇게 잘 생기고 멋진 순정남이어도 되나를 보여준 이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일 듯하다. 왕의 근육까지 멋짐을 보여준 이는 영화 ‘역린’에서 정조로 나온 현빈이다. ‘성난 근육’이라 적힌 영화 대사의 지문 한 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빈은 몇 달간 등 근육 운동을 했다고 한다.
왠 멋진 배우들의 계보? 그것도 남성만? 야구에도 ‘편파방송'이란 게 있다. 오늘 칼럼은 팬심 가득한 편파 감상문으로 운을 떼어보려 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어느 드라마나 꽃미남들이 활보하고 때로는 여성 연기자보다 더 곱고 화려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외모면 외모, 무술이면 무술, 매력이 철철 넘친다. 하지만 오래전 사극에서는 남성 연기자들이 그리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못했다. 그 고리타분한 맥락을 끊고 ‘진화’를 이끈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오가다 각양각색 한복을 입고 오가는 내국인이며 관광객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비록 대여 한복일지라도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즐겁고 행복한 표정들인데, 정작 난 여태 한복 차림으로 광화문을 누빈 적이 없다.
얼마 전 이런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인 한국인 테너 김성호(33)씨가 영국 BBC 국제성악 콩쿠르 예선, 결선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우리 가곡 ‘동심초’, ‘고풍의상’을 불러 가곡 부문에서 우승한 것이다.
김씨의 BBC 국제성악 콩쿠르 우승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2일 우리나라 유니버셜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40)씨가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상인 ‘브누아 드 라당스(Benois de la Dance)’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한국 무용수론 다섯 번째 상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엔 순교자 아내의 그리움과 슬픔을 담은 ‘미리내길’이란 순수 우리나라 창작 무용이란 점에서 여느 때와 달랐다. 남성 무용수와 함께 둘이 추는 미리내길 무대 의상 역시 한복을 응용했다.
이 두 사람은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한복(혹은 한복 스타일)을 입고 우리 고유 콘텐츠로 각각 성악과 발레란 서양예술 분야에서 수상한 것이다. K-드라마, K-팝이 해외 진출을 했어도 한동안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괴짜(Nerd)나 좋아하는 서브컬처(Subculture) 취급을 받아 은근 서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선 테너 김성호씨, 창작 무용으로 한국인의 한(恨)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 김미선씨. 이 둘의 수상은 K-컬처가 더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라 당당히 고급 문화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우리 문화사의 한 장면이라 할 것이다. 이 대목은 편파 팬덤이 아니다. 정색하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