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일본과 중국이 그렇다. 때로는 먼 나라 이웃 나라, 때로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된다. 요즘 일본과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 차원 교류가 점차 정상화되는 가운데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로 대일본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이 와중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관저 초청 만찬에서 선언문 읽듯이 ‘미국 배팅’에 관해 경고한 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그렇지 않아도 불편했던 한중 관계는 상호 대사 초치를 하며 멀어지는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그래도 일본과는 젊은 층에서 상대적으로 반감이 적은 데다 기록적인 엔저로 최근 일본 여행붐이 일며 멀고도 가까운 사이 정도는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한중은 양국 국민들의 상호 강한 반감이 관계 악화에 한몫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때 한류 바람을 일으키던 한국산 화장품 등이 반한(反韓) 정서에 외면받으며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중 정서는 싱 대사 사건 이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해 12월 미국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이 공개한 전 세계 56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의 반중(反中) 정서가 81%로 1위로 나타났다. 2021년 조사에서는 일본(88%), 스웨덴(80%), 호주(78%), 미국(76%)에 이어 77%로 4위(긍정 이미지 반영)던 한국이 2022년 조사에선 ‘세계 최악’으로 대중국 심리가 한층 부정적이 된 것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지난 2015년 시행한 비슷한 조사에선 중국에 부정적인 한국인 비율이 37%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몇 년 새 반중 정서가 두 배 이상 커진 것이다. 디플로맷은 한국인의 반중 정서 확대에 중국발 미세먼지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는데, 이는 타국민들이 ‘중국의 군사력’을 가장 부정적으로 인식한 것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 시도에 완전히 동조하기는 쉽지 않다. 일례로 독일 연립정부는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국가안보전략을 의결하며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아니라 지나친 의존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줄이기)을 선택했다.
디리스킹은 중국과 선을 긋고 분리하며 적대시할 게 아니라 중국 리스크(risk)를 관리해 나가고자 하는 서방국가들의 새로운 중국 접근 프레임이다. 지난 3월 3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방중했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당시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처음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 이후 이 개념은 지난 5월 20일 발표된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공식 제시됐고 이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언급하기도 했다.
한중 수교 30년이던 지난해 10월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에서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등 한중 학자들은 수교 30년을 보는 시각을 모은 저서를 통해 한중 관계를 ‘구동존이(求同存異),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정리했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구동존이)’와 ‘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 않음(화이부동)’은 디리스킹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중이 지금 당장은, 어쩌면 한동안은 디커플링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다른 서방 국가들과 같이 디리스킹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