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그룹에 이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빠지는 동시에 중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기업 2곳이 잇따라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우려하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중국 부동산 위기의 두 번째 진앙으로 지목된 비구이위안이 갚지 못한 이자는 2250만 달러(약 300억원)다. 올해 상반기(1~6월)에만 76억 달러(약 10조2000억원)에 이르는 순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되는 등 빚 갚을 여력이 사실상 바닥 난 상황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 회사의 총부채는 1조4000억 위안(약 257조3200억원)이다.
부동산 위기와 더불어 각종 경제 지표 악화가 중국 경제에 불안을 더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0.3% 하락했다. 당국이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이미 지난 4월 20%를 넘겼지만 실제 수치는 50%에 육박한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소매 판매는 1년 전과 비교해 2.5% 늘어나는 데 그쳤고 산업 생산 증가율도 같은 기간 3.7%로 한 달 전(4.4%)보다 줄었다.
◆잘 나가던 비구이위안, 어디서부터 꼬였나
중국이 빠진 침체의 늪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강도 높은 봉쇄와 그에 따른 지독한 내수 부진에서 시작됐다. 수요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부동산이었고 시장에 돈이 돌지 않게 되면서 주택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뚝 끊긴 데에는 당국의 규제가 결정적이었다.
비구이위안은 자금을 매우 빠르게 회전시켜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양궈창 비구이위안 전 회장은 토지 확보부터 착공까지 3개월, 분양까지 4개월, 자금 회수는 단 5개월 만에 끝내는 '3·4·5' 전략을 취했다.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한 중국에서 주택 개발은 헝다나 비구이위안 같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당국으로부터 땅의 사용권을 불하받아 집을 지은 뒤 분양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시도된 토지임대부 주택과 비슷하다.
비구이위안은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에 집중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며 이익을 극대화했다. 중국 각 도시는 인구, 경제 규모 등에 따라 1~5선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수도 베이징과 최대 상업도시 상하이는 1선, 다롄과 하얼빈 같은 성(省)의 중심 도시는 2선이다. 비우기위안은 이보다 발전 수준이 낮은 3~4선 도시를 타깃으로 삼았다. 지대가 싸고 분양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을수록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비구이위안이 디폴트에 빠진 이유는 이러한 순환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자 규제에 나섰다. 2020년 8월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해 △순부채율 100% 이하 △유동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 1배 이상 △자산부채율 70% 이하로 유지할 것을 명시한 '3대 레드라인'이 시행됐다. 중국 정부가 보기에 심각한 빈부격차는 부동산 과열이 주요한 원인이었고 개발업체의 돈줄을 조여 이를 바로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헝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과 달리 적극적으로 채무를 늘렸고 결국은 유동성이 고갈돼 부도로 내몰렸다. 대출이 막히자 헝다를 비롯한 상당수 부동산 개발업체가 주택을 완공하지 못했다. 일부 청약자는 은행에서 빌린 주택 구입 자금(주택담보대출)을 갚지 않겠다고 버텼다. 당국은 공사를 마무리해 청약자에게 주택을 인도하라고 압박했다. 헝다와 달리 비구이위안은 정부 방침에 따르기 위해 무리하게 현금을 소진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부동산 업자만 규제하지 않고 구매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제한하는 등 수요 억제 정책을 폈다는 점이다. 주택을 완성해도 살 사람이 없고 신규 개발 사업을 추진해 분양금을 끌어오려 해도 청약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동산 수요·공급 사이클이 무너진 것이다.
◆제2 리먼 사태? 중국엔 '서브프라임'이 없다
헝다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제2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다. 비구이위안이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자 이 같은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중국 부동산 시장 위기가 다른 경제 지표를 나쁜 방향으로 자극하고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 심리를 더 얼어붙게 만드는 연쇄 작용이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중국 부동산 위기는 성격이 다르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으로 몰고 간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였는데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그와 비교하면 위기의 고리가 단순하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는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은행이 무차별적으로 대출해 주고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 금융상품이 전 세계에 팔린 게 원인이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위험 채권을 사들인 셈인데 이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보험사를 끼워 넣었다.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는 은행과 보험사를 줄도산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비구이위안 사태가 중국 실물 경기 전반에 미칠 영향이 막대한 만큼 당국이 적극적으로 '결자해지'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지도 않고 금융산업 자체가 낙후됐다"며 "중국에는 서브프라임 같은 상품이 아예 없어 리먼브라더스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비구이위안 사태는 채권 만기를 연장하고 대출을 풀어주는 게 해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