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발표된 SK그룹 2024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반전은 없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성장을 이끈 주역인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부회장 4인방'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또한 최태원 회장 사촌동생 최창원(1964년생·59세)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외견상 이번 SK그룹 인사는 지난 2016년부터 최 회장을 보좌한 60대 부회장단이 용퇴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부회장 직급을 유지하되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대신 고문 역할을 맡는다. 50대 최고경영자(CEO)를 등용하면서 '공신(功臣)'들을 최대한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핵심 사업회사인 SK하이닉스와 에너지·석유화학 중간지주사 SK이노베이션에 각각 전략·관리 조직을 신설함으로써 재무 성과를 가시화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사업이 부진했고,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업황 악화와 이차전지 자회사 SK온 적자 지속 등 수익성이 하락하는 문제를 겪었다. 최 회장이 최근 서든 데스(돌연사)'와 투자 실패를 연달아 언급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최 회장의 인사, 조직 개편 방정식에는 후계 구도라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있었다. 세대교체와 수익성 강화를 꾀하는 동시에 차기 대권을 누가 가져가는지와 관련해서도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창원 부회장을 그룹 2인자 격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세우면서 '포스트 최태원'의 실마리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과거 SK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에 이어 최종현 회장으로 형제 간 승계를 했다.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이후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데 가족들이 동의한 데 따라서다.
현재 SK그룹은 SK㈜를 정점에 둔 최태원 회장 계통과 최종건 회장 직계인 SK네트웍스(최신원 전 회장), SK디스커버리로 나뉘어 있다. 최창원 부회장의 SK디스커버리와 그룹 본산인 SK㈜ 사이에 직접적인 지분 관계는 없다. 단일 기업집단이지만 사촌형제 간 독자적 경영을 하면서 '따로 또 같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최태원 회장은 4살 아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에게 중책을 맡김으로써 훗날 다가올 3세 경영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에 최윤정·민정·인근 세 자녀가 있지만 승계를 논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장녀인 최윤정(1989년생·34세)씨는 이번에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맡으며 임원이 됐다. 장자인 최인근(1995년생·28세)씨는 SK E&S 북미법인 매니저로 재직 중이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에서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며 후계 구도에 관한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최 회장은 "나만의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21년에는 BBC에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제 자녀도 노력해서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누구라도 배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향후 최 회장 친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SK온 대표이사·1963년생)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일 전망이다. 그룹 2인자 자리에 최창원 부회장이 오르면서 최 수석부회장이 후계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최 수석부회장은 2021년 SK온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최 회장이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활동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형을 대신했다.